어릴 적 내가 가장 먹고 싶었던 도시락 반찬은 분홍색 소시지 볶음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가공육류 일체를 방부제 덩어리로 치부하면서 반찬으로 만들기를 거부하셨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입에도 대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소시지가 먹고 싶다는 요구는 언감생심이었다.
건강식을 중시하는 엄마 덕분에 나의 도시락은 종종 돼지고기 수육에 굴이 잔뜩 들어간 보쌈 같은 것으로 채워지곤 했다. 하지만 어린 나의 입맛으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보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불량 소시지가 늘 1순위였다. 친구가 소시지를 싸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잽싸게 다가가 물었다. “도시락 나랑 같이 먹을래?”
유전자가 어딜 가겠는가. 나를 닮은 아이들도 소시지를 좋아한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자라면 아이들에게 결핍으로 남는다고 생각하시는 시어머님은 손자들에게 초컬릿이나 사탕 같은 것도 넉넉히 내어주시고, 사선으로 칼집을 낸 줄줄이 프랭크 소시지 볶음도 대접에 한 가득 해주신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크면, 맛난 것들이 끊임없이 나왔던 할머니 댁에 대한 추억이 아련할 것이다.
나도 이제 수육과 보쌈을 즐기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굴이 들어간 김치를 만들어주실 친정 엄마는 한국에 계시니 먹고 싶은 음식은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어쩌다 큰마음 먹고 수육을 삶아도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다.
게다가 일하는 엄마라는 그럴싸한 핑계가 있어 냉장고에는 최소한의 조리만으로 먹을 만하게 되는 반조리 제품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얼마 전 장보러 갔다가 추억의 분홍색 소시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냉큼 사왔다. 계란 씌워 노릇노릇 부쳤는데 예전 맛이 아니었다. 원래 이렇게 퍽퍽했나 할 정도로 그저 그랬다. 게다가 어릴 때의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 정체도 알 수 없는 방부제가 소시지 틈틈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그 교육 덕분에 나도 집에서 먹을 때는 밥에, 나물에, 국 종류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를 닮아 나 역시 아이들에게 건강식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은 햄버거와 피자가 주를 이루는 학교 점심에 열광하는 편이다.
집에서 싸주는 음식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내심 모르는 척 하는 중이다. 학교 영양사들이 알아서 식단을 잘 짤테니 괜찮겠지 하며 마음 편히 공립학교를 신뢰하고 있다.
엄마는 우리 사남매의 도시락을 매일 다르게 싸셨다. 시험기간이라 피곤할 둘째에게는 입맛 돋는 매실 장아찌를, 운동하는 셋째에게는 단백질이 많은 두부조림을, 키가 작은 넷째에게는 멸치 볶음을 더 넣는 식이었다. 그리고 후식으로는 항상 제철 과일을 싸주셨다. 그게 얼마나 큰 수고였는지 이제야 알아간다.
며칠 전 내 생일이라고 남편과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었는데, 문득 엄마가 해주셨던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미역국이 못 견디게 먹고 싶었다. 점점 나이가 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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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조 마케팅 교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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