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7세기 썼던 ‘비서체’ 현재의 눈으론 해독 불가
▶ 셰익스피어 관련 모든 자료 보통 문자화·디지털 작업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의 필사본 큐레이터인 닥터 헤더 울프가 도서관 내 파운더스 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필체 읽기 전문가 헤더 울프의 ‘고문서 탐험’
헤더 울프(Heather Wolfe)는 셰익스피어 전문가는 아니지만 수많은 셰익스피어 전문학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고 있다. 바로 그의 손 글씨, 필체를 읽는 일이다.
16세기와 17세기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문서를 비서체(secretary hand)라고 불리는 필기체로 기록했다. 훈련되지 않은 눈으로는 거의 읽기가 불가능한 서체다. “h”는 마치 푸줏간의 갈고리처럼 보이고 “m” “n” “i” 그리고 “u”는 서로 구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또 “s”는 아라비아 숫자 6이나 당근처럼 보이기도 한다.
닥터 울프는 워싱턴 DC에 있는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의 필사본과 기록물 큐레이터이며, 이런 문서들을 읽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현재 그녀가 이끌고 있는 프로젝트는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대에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해 남아있는 모든 참고자료를 보통 문자로 고쳐 쓰고, 디지털화하고, 온라인에 게시하는 일이다. 그녀는 틀리게 옮겨진 글들과 의문의 도장들, 베니스의 주립기록보관소 구석에 틀어박혀있던 출판되지 않은 문서들을 하나하나 해독하며 수세기 동안 간과되어온 세부사항들을 발견하고 있다.

16세기와 17세기에 사용된 필기체인 ‘비서체’의 알파벳.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거의 해독이 불가능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그가 손으로 쓴 초안은 전해지는 것이 없고 모두 출판본 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학자들이 셰익스피어가 손으로 쓴 것이라고 믿는 3개 페이지가 있는데 앤소니 먼데이와 헨리 체틀이 쓴 희곡 ‘토머스 모어 경’의 수정본이다. 이 3장 역시 비서체로 쓰여있다.
닥터 울프의 프로젝트는 셰익스피어의 400주기를 기념해 현재 폴저 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50개의 셰익스피어 관련 문서들의 전시를 위해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전시 준비를 위해 그녀는 영국의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들을 방문, 폴저로 대여해올 문서들을 미리 검토하고 해석하는 일을 했었다. 옥스퍼드의 보들레이안 라이브러리에서 닥터 울프는 천문학자 사이먼 포먼이 1611년 글로브 디어터에서 감상한 4편의 연극에 대해 자신의 느낌과 도덕적 교훈을 기록한 설명을 랩탑으로 타이핑하여 옮겨 적었다. 그것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청중이 남긴 가장 자세한 설명으로, 셰익스피어 전문가들이 흔히 인용하는 글이기도 하다.
‘겨울이야기’에서 사람들의 돈을 훔치는 사기꾼 아우톨리커스(Autolycus)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포먼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가짜 거지들이나 아첨하는 흉악범들에 주의하라”(Beware of trusting feigned beggars or fawning felons). 그런데 80여년동안 학자들은 ‘흉악범들’(felons)을 ‘녀석들’(fellows)이라고 잘못 인용해왔다. E.K. 체임버러스가 1930년에 쓴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그렇게 적혀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n”과 “u”를 혼동한 것이다.
닥터 울프는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 판본의 편집자들인 바바라 모와트와 폴 워스타인과도 함께 점검했으며 그들도 ‘녀석’이 아니라 더 나쁜 ‘흉악범’이라는 울프의 해독에 동의했다.
“나는 셰익스피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사실을 말하려면 굉장히 긴장하게 됩니다. 수백년 쌓인 학문의 맨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이죠. 그 위치에 나를 올려놓다니, 조금 뻔뻔하게도 느껴져요”
44세인 닥터 울프는 애틀란타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 리딩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앰허스트 칼리지를 졸업한 그녀는 셰익스피어를 충분히 공부한 것 같지 않아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의 석사과정을 더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으려는 생각이었으나 대신 그녀는 400년된 서체 읽는 법을 배우고 나서는 고문서학에 푹 빠지게 됐다.
“고문서학(paleography)이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어요. 그런데 한번 읽는 법을 배우고 나니 거기엔 중독성이 있더군요”
그녀는 바로 중독됐고, 케임브리지에 남아 박사학위를 마쳤으며 UCLA에서는 도서관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 그녀는 폴저의 디렉터에게 전화해 ‘학자 사서’라는 새로운 개념의 직원을 고용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고 2000년 폴저의 스탭이 되었다.
‘문서화된 셰익스피어’(Shakespeare Documented)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는 지난 1월말 온라인(shakespearedocumented.org)에서 출범했다. 지금까지 30여개 기관이 출처인 400개 문서의 500개 레퍼런스를 포함하고 있다. 문서의 이미지들은 온라인에 게시돼있다.
수세대에 걸쳐 그에 관한 것이라면 한줄 지나가는 말이라도 샅샅이 뒤져왔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이 모르는 것이 무척 많다. 닥터 울프가 발견한 큰 건수 중의 하나는 셰익스피어 학자들에게 1908년 런던의 정부 출판국에서 인쇄한 요약본으로만 알려진 문서다.
1616년 영국 주재 베니스 대사였던 안토니오 포스카리니는 신교로 개종한 것과 술주정뱅이, 여색 탐하기, 극장에 자주가는 연극광 등의 죄목으로 기소돼 베니스에서 재판에 부쳐졌다.(훗날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 기록은 1617년 런던에서 그의 과거 통역사인 오도아르도 과조의 증언 녹취록도 포함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셰익스피어 학자들이 참조해온 이 데포지션의 요약본은 포스카리니의 전임자가 참석했던 셰익스피어 연극 ‘페리클레스’ 공연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닥터 울프는 케임브리지 시절 학우였으며 현재는 이탈리아 아오스타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중인 카를로 M. 바제타에게 베니스 주립 기록보관소의 오리지널 데포지션을 찾아내 번역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탈리아어로 쓰인 그 녹취록은 런던 외교관의 연극애호 습관에 대해 훨씬 더 다양한 사실들을 보여주었다. 포스카리니에 대해 통역관은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 그는 두번 혹은 세번 갔지만 나는 한번도 그와 함께 간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적으로 가곤 했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포스카리니의 전임자 대사는 프랑스와 피렌체 대사들을 ‘페리클레스’ 연극에 초대해 공연값으로 지금 돈으로 1,200달러에 달하는 20스쿠디 이상을 지불하기도 했다.
닥터 울프 팀이 발견한 이 문서에 대해 하버드 대학의 스티븐 그린블라트 교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린블라트 자신이 이 에피소드에 대해 기술한 적이 있지만 더 자세한 설명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분실되고 사라졌다. 우리는 과거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과거의 조각들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닥터 울프는 또한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하인이었던 헨리 로렌스의 도장을 빌려서 사용했던 사실도 밝혀냈다. 1613년 3월10일 그가 런던의 블랙프라이아스 게이트하우스를 140파운드에 구입하는 증서에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셰익스피어는 80파운드를 현찰로 냈고, 다음날짜의 문서를 보면 집을 판 헨리 워커에게 60파운드를 저당잡힌 것으로 돼있다. 거기서도 셰익스피어는 같은 도장을 사용했다. 닥터 울프는 두 개의 거래 모두 같은 날 같은 방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그랬다면 당시의 교환 문화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넓혀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대답을 주기도 하지만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고 마이클 위트모어 폴저 도서관장은 말했다. <사진 ws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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