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사실 이 날은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는 미처 빨간 표시가 되지 못한 슬픈(?) 기념일들 중 하나이다. 1908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평등한 권리를 요구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이 날을 공휴일로 삼은 국가 분포도를 보니 전통적으로 사회주의가 강했던 국가들이 많은 것 같다. 그 지도에 의하면 한반도의 반 토막 북한에서도 이 날이 공휴일인 것으로 나타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조금 흥미롭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세계 여성의 날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시절 학보사 시사부 기자로 활동할 때였다. 여성의 권리에 대해 별 이해가 없었던 당시 나는 세계 여성의 날은 목소리 강한 여성주의자(?)들이 제정한 날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날은 기억 속에서 그 존재조차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페이스북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알리는 포스팅을 만들어 발표함에 따라 잊고 있던 이 날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금요일 교육 대학교 전체 교수 평의회에서 회의 시간을 모두 할애 했던 학내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전략과 계획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다양한 담론들이 오갔지만 특히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가 있었다.
많은 여자 조교수들과 정교수들은 남자 동료들과 비교해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많은 여자 부교수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것이었다. 부교수 시절은 교수들이 안팎으로 한창 바쁜 시기이다. 교수로서의 경력 중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여교수들이 겪는 불평등이 여전히 만만치 않음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
얼마 전에는 미국 내 교육 효과 연구학회에 다녀온 두 여자 교수들이 학회에서 목소리 강한 남성 위주로 발언 기회와 논의가 이루어졌음을 성토하기도 했다. 교육학은 다른 분야에 비해 여교수 비율이 높고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교육 가치 또한 중요시 하는 곳이라 사정이 나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미국 내 학교와 학회 사정이 이 정도이다.
‘여성’과 관련한 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인터넷 동영상을 보았다. 한국의 청와대 조찬 기도회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다. 한 목사가 “세계 여성 정치인들은 육중한 몸매인데 우리 대통령은 여성으로서 미를 갖고 계신다”며 국가지도자를 몸매와 “모성애적인 따듯한 미소”로 평가하는 장면이었다.
아무리 기분 좋으라고 한 아부성 발언일지라도 그 적절치 않은 발언에 미소짓는 대통령을 보며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대통령 역시 어쩔 수 없이 웃었기를 나는 조심스럽게 바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개인 트레이너를 청와대 행정관으로 임명하고 1억원 상당의 헬스 장비를 사들여 시끄러웠던 2년 전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긴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와 KKK가 여러 가지 이유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 후 100여년 지났는데, 여성 평등을 말하는 것이 진부하다 하기엔 아직 이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곧 태어날 여자 조카가 성인이 되고 커리어를 시작할 때에는 정말 이런 진부한(?) 이야기가 오래 전에 잊혀진 과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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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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