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고 한다. 문득 한 치가 어느 정도 길이인가 찾아보니 한 치는 1/10 자이고, 한 자는 대략 30cm 정도라고 한다. 한 치는 3cm 정도인가보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6개월은 길이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 전체에 해당하는 길이가 얼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정말이지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이렇게 도무지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채우는 헛헛한 날들이 있다.
굳이 6개월이라는 시간 프레임을 들먹이는 이유는 최근 6개월 사이에 주변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마구 발생하여 개인적으로 마음을 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우선 불과 6개월 전 새로 집을 샀다고 자랑하며 행복해하던 부부. 이들이 법적 정리까지 완벽하게 끝낸 이혼 소식을 알려왔다.
그런가 하면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즐겁게 함께 식사하고 운동했던 사람들 중 3명이 각기 다른 종류의 암 진단을 받아 길고도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에 돌입했거나, 돌입하거나, 기도를 바라고 있다.
아무리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이고, 내일은커녕 오늘 저녁에 일어날 일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불확실성이 가져오는 충격이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터지니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나이가 어리던 많던 지극히 건강했고 건강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병 진단 받았다는 이야기는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물으면 10명중 8-9명은 그런 사람 알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흔한 일이다.
세상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세상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가운데 발생하곤 한다. 이 모두가 생로병사의 현상들이 아닌가 싶다.
한 치 앞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겪거나 목격할 때 빼꼼 고개를 내미는 마음속의 숙제가 있다. 내일을 알 수 없으니 내일에 기대어 살수도 없고, 그렇다고 오늘만 생각하며 살 수도 없으니 하루하루를 도대체 어떻게 균형 있게 살아야 할지가 가끔은 막막한 숙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바쁜 일상에 떠밀려 이 숙제의 답은 찾아내지 못한 채 그냥 잊어버리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다. 저마다 신앙을 통해, 학문을 통해, 가족을 통해, 사랑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어쩌면 그냥 그렇게 답 찾는 시늉만 하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그냥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겪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3cm 앞도 못 보는 게 인생이니까, 아픈 지인 3명이 모두 다 나을 수도 있는 희망의 불확실성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 걸까?
아마도 그 길고 고통스러운 투병과정을 지켜볼 것이 두려워서 그렇고,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니 내게도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그러한 것 같다. 이 세상에 소풍 다녀간다며 세상을 떠날 수 있었던 천상병 시인의 마음이 그저 위대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직도 내가 안 보이는 3cm 앞만 주목하고 인생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일까? 쓸데없는 생각들에 마음이 어지러운 겨울밤이다. 기도밖에는 답이 없는 인간의 한계가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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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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