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겐조는 은퇴 당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이 시대의 아름다움을 마감한다”는 멋진 이유를 댔다. 지방시는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은퇴를 한다고 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바쁘게 지냈기 때문에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을 테니, 그런 한가함을 위해 그는 은퇴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디자인이라는 창조적인 일 앞에서 어쩌면 더 깊은 한계를 느끼며 휴식을 갈구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일하는 재미라는 것은 대단하다. 내 몸을 혹사하며 일을 할 때의 뿌듯함, 일을 쌓아놓고 스트레스 받을 때의 팽팽함, 그리고 일을 끝냈을 때 느끼는 허탈함도 참 좋다. 물론 결과가 좋을 때 갖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은 더 없이 감미롭다. 내가 몰입해서 하는 일이란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균형을 잘 조절하지 못해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경우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인지 일인지 혼동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휴식이 필요한 때이다.
미국 회사에서 일하며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일을 잘하는 사람들일수록 정말 잘 논다는 것이다.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며칠 밤을 새며 고생을 하더라도, 막상 출시하는 날 저녁에는 축하 파티를 하며 밤늦도록 기운 좋게 노는 모습들을 자주 봤다.
일 잘하는 사람들은 일의 계획만큼이나 노는 계획도 철저하게 세운다. 그렇게 미친 듯이 놀아서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기 때문에 다음날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일과 휴식의 적절한 균형이 롱런의 비결임은 확실하다.
컨설팅이란 원래 고객의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필드라지만, 작년 한해 매출 감소가 심했던 고객 덕분에 올해 초부터 나는 의도치 않게 한가해져 버렸다. 학교 강의만 대충 하면서 이렇게 놀아도 되나 잠깐 고민했었는데, 아예 노는 계획을 철저히 세우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업무 부담으로 긴장하고 예민해져 늘 “출장 갔다 오면 밥 한번 먹자”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런 나를 아직도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진심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며칠 전에 한 후배가 문자로 새해 인사를 했는데, 습관적인 대답을 하려다 이참에 같이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날짜를 잡았다. 알고 보니 후배는 이번 학기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방학 하자마자 한국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번에 안 만났으면 많이 섭섭할 뻔 했다.
두번째, 되도록 많은 곳을 여행할 계획이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캠핑과 주말 기차여행을 많이 할 것이다. 코 까맣게 그을려가며 마시멜로우도 굽고, 추운 텐트 안에서 꼬물거리는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 잘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 어릴 적 꿈꿨던 ‘목적지 정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역에서 내리기’ 같은 것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맛집 기행도 물론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바로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할 텐데 나는 이 계획들을 “확실히 놀기 위한 액션 플랜”이라고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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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조 마케팅 컨설턴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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