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해보겠다고 계획했을 때, 그것은당연히 배낭여행이어야만 했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이 나라 저나라 돌아다니는 것은 어렸을때부터의 꿈이자 20대에 내가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일일것 같았다. 퐁네프의 다리에서멋진 프랑스 남자를 만날지도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프랑스어책을 사다 놓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 늘 그렇듯 -상상 이상이었다. 낭만과는 반대쪽으로 말이다. 옷가지를 비롯해전 재산이 들어가 있는 큰 배낭을 메고 가장 싼 민박집이나 유스 호스텔을 찾아 몇 시간씩 걸어 다니다 보면 등만 닿아도 눈이 감겼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앞에서는 얄팍한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발걸음을 돌리고,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지갑을 한 순간에 소매치기 당하기도 하면서나는 배낭여행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숙박비를 아끼느라 밤기차를타고, 검표원이 문을 열 때마다발밑에 둔 배낭을 잃어 버릴까봐 벌떡 일어나길 반복하며, 막상 도착지에서는 너무 졸려 기차역 의자에서 새우잠을 잤던여행. 영어가 한마디도 안 통하던 동유럽 어느 조그만 빵 가게에서 한참동안 손짓 발짓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빵 한 개 살수 있었던 여행. 참 몸이 고달픈여행이었다.
낭만이 없지는 않았다. 민박집에서 처음 만난 게스트들과 마음이 맞아 미술관을 같이 가보기도 하고, 몽마르트르 언덕 한구석에서 쓰디쓴 에스프레소 한잔에 인생을 느끼는 척 고뇌도해봤다.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결국 배낭여행이라는 것을 해봤고, 그 경험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결혼하기 전에꼭 여행을 해볼 것을 권한다. 배우자와 함께 하는 여행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므로.
시간이 많이 지나 나는 취직을 하고 돈을 벌게 되었다. 일의성격상 여러 나라를 다닐 기회는 많아졌는데, 그 만큼 내가 책임지고 끝내야 하는 일도 많아지면서 쓸 수 있는 시간은 대폭줄어들었다.
출장을 가면 회사에서 잡아주는 좋은 호텔에 묵고, 고객들과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도한다. 간혹 미팅이 취소돼 호텔수영장을 이용하는 사치를 누리기도 하고, 가끔은 비행기 좌석승급을 받아 쾌적한 비즈니스석에 누워 오는 경우도 있지만,대부분의 출장은 공항-호텔-회사의 동선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일만 하다 돌아오는 스케줄이다.
드디어 싼 민박집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여유가 생겼는데, 이제는 즐길 시간이 없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어디 그뿐이랴. 엄마가 되어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데려오며길에다 쏟은 시간을 다 합쳐보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루를온전하게 나를 위해 썼던 때가언제였는지… 젊은 날엔 젊음을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완벽하게 방음처리 된 안락한 호텔 방에서 잠을 청할 시간이면, 신기하게도 그 시절의기억이 떠오른다. 민박집 윗 침대에서 누가 엄청난 소리로 코를 골아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던 그 때, 샌드위치 하나로하루를 버티며 발이 부르트게돌아다니던 그 때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2년 전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엔딩 내레이션을 듣고 깨달았다. 차비를 아끼려 그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었던 시간이 바로 청춘이었음을. 그리고그 고달팠던 시절이 참 멋졌음을.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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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조 마케팅 컨설턴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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