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러 해 동안 강원도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19개 시군의 행정 구역으로 되어있던 강원도 전역으로 자주 출장을 다니곤 했는데, 영동지역으로 가게 될 때는 주로 한계령을 넘어 다녔으나 때로는 미시령을, 어떤 때는 해발 529M의 가장 낮은 고개 진부령이나 높고 험한 대관령을 넘기도 했습니다. 업무상의 출장이긴 했어도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자연 경관, 하늘 높이 솟은 암벽과 무성한 초록의 삼림, 기암괴벽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줄기 등 강원도의 빼어난 경치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느 해 겨울, 영동 지방을 방문했다가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산골 마을에서 묵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동해의 거친 바람이 넘나드는 산자락에 있는 마을에서 지낸 며칠은 제게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추운 겨울이 되면 사람들의 몸이 움츠러들게 마련인데,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가 되니 오히려 신나는 얼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곳 주민들의 모습은 추위를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의아스러웠으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동해에서 잡아온 명태를 영하 10도나 그 이하의 기온에서 얼리면서 말려야 질 좋은 황태가 되어 값을 잘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주민들은 날씨가 추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추위 속에서 얼면서 마른 황태는 독성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성분이 있어 몸 안에 쌓인 중금속이나 주독을 제거하기 위한 해장국의 주재료로 쓰이므로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영하의 추위도 아랑곳없이 무거운 생선을 등에 지고 마치 서커스를 하듯 통나무 덕장 위를 넘나드는 주민들의 활발한 삶의 현장은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제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겨울이 추운 이유 중에 하나가 아마 이곳 백두대간 산마을에서 황태를 만드는 주민들의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육각수가 좋은 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이지요. 그 육각수를 쉽게 얻는 방법이 물을 영하의 온도에서 얼렸다가 녹이는 것이랍니다. 물이 어는 과정에서 물속에 있는 불순물이 빠지고 순수한 물인 육각수가 된다고 합니다. 명태가 강추위를 견디면 사람 몸에 더욱 이로운 황태가 되듯이 말입니다.
어느 명상가는 겨울이 추운 이유, 특히 “세밑 혹한”의 의미를 지난해의 나쁜 기운이 새해로 건너오지 못하게 하려는 신의 엄격한 장치라고 했습니다. 그리 보면 삼라만상의 모든 상황은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장두노미(藏頭露尾)”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타조가 머리는 풀숲에 박고 꼬리는 감추지 못하는 형상을 비유하는 표현이지요. 표면적으로는 경제가 활성화 되고 복지국가라고 하나 실제로 서민들의 생활은 어렵고 빈부의 골이 더욱 깊어지거나, 교회 안에서는 직분과 봉사로 얼굴을 가리고 뒤로는 부정행위나 불륜을 저지른다면 이것 또한 “장두노미”의 한 형태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는 입장임에도 거짓 조건을 만들어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좋은 집에서 고급 차를 타고 다니는 것 역시 얼굴은 가렸지만 꼬리는 감추지 못한 장두노미 로서 공정한 사회 발전에 지장을 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세밑 혹한”은 이러한 부정적인 기운 이 새 해로 건너오지 못하게 한다는 명상이론에 공감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겨울이 추워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향상된 “국격”뿐 아니라 정직하고 당당한 “민족격”도 자랑할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것이 저만의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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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선 (전 보스턴 한미 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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