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멕시코 만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 지 벌써 84일째였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첫 구절이다.
연말, ‘감사’의 계절이다. 감사라는 감정을 특정 계절에 국한시킬 수는 없지만, 돌이켜보는 일이 잦아지는 연말이 되면 또 공휴일로 주어진 감사절을 보내다 보면 하나 둘씩 자연스럽게 감사한 일들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가끔 감사란 생각을 어느 시점에서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소설 속을 살아가고 있다. 이는 큰 모험과도 같은 사건이라 할만하다.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것과 더불어 그 이야기의 결말에 대한 책임과 영향도 고스란히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삶을 정말 소설에 비유할 수 있고, 시점에 따라 감사의 내용과 그 크기는 얼마든지 달라질 것이란 문학적 가정으로 <노인과 바다>를 다시 본다.
이보다 더 허무한 시작은 없을 것이다. 수고만 가득하고 그에 합당한 소득이 없는 하루하루. 주위 사람들조차 그를 ‘살라오’ 즉 ‘최악의 사태, 불운’이라 부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혼자였다. 이전의 사건은 그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크게 기억되지 않았다. 그냥 현재의 실패만 기록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 이튿날에도 변함없이 담담히 바다로 나아갔다. 그리고 85일째가 되던 바로 그날, 실로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를 만나게 됐다.
진정 행운이었을까? 그 노인에게도 그가 가진 배에도 그 큰 고기라는 ‘성공’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목숨을 건 악전고투 끝에 그에게 남은 건 심히 지쳐버린 몸과 상어 떼 습격에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진 고기의 뼈 일부, 그리고 파손된 배였다.
이쯤에서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글의 기승전결을 생각한다면, 이 시점이 일년 중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연말쯤이 될 것 같다.
올해라는 소설의 첫 구절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혹 이 소설은 처음처럼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실패의 기록은 아니었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가장 흥미진진해야 할 절정의 순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크고 작은 성공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이제 2015년이라는 소설의 대미를 장식할 한 달의 기회가 남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다 역시 그 노인의 바다처럼 어떠한 희망도 약속해주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우리 역시 그 노인처럼 생계의 이유로든, 모험의 이유로든 바다로 가는 일을 그칠 수는 없다.
삶이라는 소설의 구절구절, 그 기록의 책임이 각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어쩌면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기록엔 새로운 해석이, 아직 채워야 할 시간엔 ‘열려있는 결말’이라는 축복이 더해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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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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