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은 주로 성폭행, 성희롱, 정신적, 언어적, 물리적 폭력 등으로 나타나지만 심각한 경우 살인에 이르기도 한다. 교제하던 혹은 교제했던 연인에 의한 살인사건이 꽤나 빈번하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몇 개월 전 한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하나는 특히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전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를 살해한 후 콘크리트에 암매장하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것처럼 여자 친구의 휴대폰을 이용해서 그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했던 사실 때문이다.
매스컴은 살해된 여성이 유학을 막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재원이며, 어렵다는 취업문을 통과해서 외국계 회사에 막 합격한 상태였음을 알리면서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인지를 강조했다. 심지어(?) 피해자는 외모도 출중했다.
나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사를 읽다가 환하게 웃고 있는 피해자의 대학 졸업사진을 보면서 “아… 이렇게 얼굴도 예쁜데…”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놀라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아니, 잠깐만... 덜 예뻤다면 이 사건이 덜 비극적이라는 거야 뭐야?”그러잖아도 비극적인 사건에 피해자의 미모가 비극성을 더한다? 그건 왜일까 잠시 생각해보니 내 안에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심리가 잠재해 있었다. 바로 외모가 주는 일종의 기대감이다.
외모가 빼어난 사람에게는 더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기고 그는 혹은 그녀는 행복할 것이라는 혹은 행복해야 한다는 기대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비극성은 더 극대화한다.
다시 내 생각을 들여다보니 그렇다고 못생기거나(물론 판단은 항상 주관적이다) 외모가 험상궂은 사람에게 더 나쁜 일이 많이 생기고 그 사람이 불행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의 외모가 흉악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잔혹함에 몸서리를 치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곱상한 외모를 가진 범죄자들은 외모로 인해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하고, 실제로 외모 때문에 피해자들의 경계심이 낮아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데 생각이 미치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쓰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이런 편견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만, 젊은 날에는 타고난 얼굴로 사는 게 아닌가.
주어지는 정보를 기반으로 마음속에 어떤 ‘상(image)’을 형성하는 것이 아주 잘못된 일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옳던 그르던 우리가 이런 현상을 인식하는 것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또 남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 같다.
어느 칼럼니스트가 지적한 것처럼 남성 지도자에게는 매일 같은 옷차림이 의사 결정을 최소화하려는 덕목으로 여겨지지만 여성 지도자에게는 그것이 놀림거리가 되고는 한다. 이 역시 각기 다른 기대치, 결국 편견 때문이다.
편견은 때로 강화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지만, 우선은 내가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인식하는 게 중요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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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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