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좋은 어느 토요일 오전, 가족들과 집에서 멀지 않은 해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발 가는대로 걷다 보니 넓은 모래사장이 나왔는데 한 구석에 조그만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곧장 바다로 이어져 있는 개울은 매우 좁고 얕았기 때문에 우리는 가뿐히 건넜다.
뒤를 돌아보니 네 살짜리 둘째가 개울 너머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뭐해?”하고 물었지만 짐작했다. 저 아이가 개울을 넘어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둘째 아이는 이상하리만큼 물을 두려워했다. 수영장에 가도 큰 아이는 멀리서부터 달려가 첨벙 뛰어드는 데 반해 둘째는 수영장 계단에 앉아 발만 담근 채 한 시간이고 가만히 있었다. 나나 남편이 아이를 안고 물에 들어가는 것은 괜찮지만 온갖 안전장치를 다 한 후에도 절대 수영장에 혼자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평소에 얌전한 아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그 나이의 남자 아이들이 그렇듯 에너지가 넘쳐 일분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매우 활달하고 씩씩한 남자아이다. 아직은 어려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있지만 자주 수영을 가는 것치고는 유달리 물과 친해지지 못했다.
모래사장 한쪽에서 그야말로 졸졸졸 흐르고 있는 개울물은 발목이나 찰까 한 깊이였다. 아이는 안아달라고 했다. 혼자서 건너오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다.
개울을 건너고 나서도 얕은 바닷물에 들어가 조개를 줍는 우리들 근처에는 오려고도 하지 않았고 물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모래 장난을 하는 것이 다였다. 엄마 아빠랑 같이 물에 들어가 보자고 했지만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좀 놀다가 아이를 데리고 그 개울 근처로 갔다. “여기 손만 담가 볼까?” 아이는 손을 넣다가 물에 빠질지도 모르니 안하겠다고 했다. 바로 옆에 두어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가 놀고 있었다. 아이가 흘끔 보더니 조심스레 손 하나를 물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도 땡볕에 한참을 기다려 나머지 손을 집어넣었다.
“이제 발도 담가볼까?” 아이는 도리도리를 했다. 썬 크림을 바르지 않은 내 뒷목이 벌겋게 익는 것 같았다. 한쪽 발만 담가보자… 아이는 또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 한쪽 발을 물에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얼마 안 있어 나머지 발도 물에 집어넣고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나, 어떻게 물에 혼자 들어갔어? 대단하다!” 아이는 드디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물 안에서 맨발로 뛰기도 하고 돌도 주었다. 이제 발목 수준의 개울물 안에서는 편안해 보였다.
“물이 무서워?” 슬쩍 물었다. 아이는 파도가 세게 쳐서 개울물을 따라 자기한테까지 오면 어쩌냐고 했다. 거리상 절대 그럴 리는 없어 보였지만 네살짜리에게 역학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 아이의 어떤 기억이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그 나이에 벌써 혼자 감당해야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 엄마 입장에서는 무척 안타깝다.
내가 배운 대로 등을 한번 밀어줄 수도 있겠지만, 일단 나는 본인의 의지가 생길 때 까지 강요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무조건 기다려 주기, 내 속도로 가지 않는다고 다그치지 않기, 믿고 지지해 주기, 그리고 더 자주 사랑을 표현하기… 사실 그거 외에 다른 좋은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성격 급한 나에게는 불리한 선택을 한 듯싶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참을 인(忍)자 만번을 써야 한다는데… 그때까지 내 인내심이 바닥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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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조 / 마케팅 컨설턴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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