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Lost in Translation(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2003)’에는 일본 도쿄에 갑자기 오게 된 미국인 백인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도쿄에서 일하게 된 남편을 따라온 여자는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소일거리를 찾으며 하루를 보낸다. 나름 알려진 중년 배우인 남자는 광고를 찍으러 도쿄에 왔으나 비즈니스일 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은 고독하다. 낯선 도시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워야 할 배우자나 가족으로부터 감정적으로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 사람이 바에서 우연히 만나 (영어로) 인사를 트고, (영어로) 많은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현재 출장으로 2주 간 도쿄에 머물면서 문득 이 영화가 생각났다. 이맘 때 도쿄는 선선한 날씨에 여행하기에 매우 좋지만, 세계 7위 메트로폴리탄답게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 이방인의 혼을 쏙 빼놓는다. 하지만 9년 전 이곳으로 배낭여행을 왔던 경험이 있고, 세계 15위 메트로폴리탄으로 꼽히는 서울에서 20년 이상 산 경험도 있기에 이번 출장에는 굉장히 자신만만했더랬다.
출장 중 머문 호텔은 마침 신주쿠 역 근처에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신주쿠 역은 하루 평균 360만명이 이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신주쿠 역의 내부는 개미굴을 방불케 했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걷는 인파를 뚫고 개찰구로 향하는 길은 울돌목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사방팔방으로 쏟아지는 사람들에 치이다가 순간 발을 멈춰선 적이 있는데, 멍하게 “여긴 어딘가” 하는 찰나에 문득 영화 ‘Lost in Translation’이 생각났다.
이 영화에서 도쿄는 그저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진짜 메시지는 사람과 사람의 교류에 있다고 본다. 같은 미국 땅에 있어도, 심지어 같은 집에 살아도 감정의 문을 닫고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사용하는 언어와 상관없이 서로 말이 안 통하는 느낌 - 그야말로 ‘Lost in Translation’이 될 수 있다.
만약 영화의 주인공들이 본인들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 역시 때로 무모하다 싶은 시도를 하는 데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반응을 해준다.
이번 출장 중에도 숱하게 길을 헤매었다. 그런데 도움을 청하면 열에 아홉은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주려고 애를 쓴다. 스마트폰을 켜서 지도를 봐주고, 목적지까지 동행해주겠노라는 제안도 한다. 한번은 깜깜한 저녁에 방향을 잃어서 호텔을 찾지 못했다. 지나가던 커플에게 길을 물으니 그들은 20분여를 함께 걸으며 호텔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감사하다는 말만 거듭 건냈다.
비단 길을 잃었을 때뿐만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힘들고 외로울 때 혼자 끙끙 앓기 보다는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툭 털어놓아보자. 그 말 한 마디 꺼내기가 어려워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할 수도 있지만, 털어놓으면 의외로 시원한 답변 혹은 따듯한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Lost in Translation’은 말이 안 통한다고 치부하고 지레 덮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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