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1년 ‘닉슨 쇼크’에 금 천정부지
▶ 오일쇼크 겹치며 미 GDP 역성장
▶ 2008년 위기 때도 금값 상승 선행
▶ 관세 조차·연준 금리 인하 압박 등
▶ 트럼프 잇단 예측 불가능 행보에 달러 신뢰 잃고 금 패닉 바잉 늘어
▶ 1년새 64%↑ 2008년보다 가팔라

3일 프랑스 파리의 한 귀금속 가게 내부에 골드바가 전시되고 있다. [로이터]
가팔라도 너무 가파릅니다. 금값이 1년새 70% 가까이 치솟더니, 하루 만에 9%나 추락하면서 투자자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습니다. 보통 금·은과 같은 금속 가격은 완만한 상승세를 그리다 뚝 떨어지며 조정기를 거치기 때문에 ‘계단으로 올라가고 엘리베이터로 내려간다’고 표현하는데요. 전문가들은 최근의 상황을 ‘엘리베이터로 올라가 엘리베이터로 내려간다’고 묘사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습니다.
큰 지진이 발생하기 전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하듯, 역사적으로 금값 폭등은 경제위기를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금은 세계 경제에서의 미국의 지위, 구체적으로는 달러의 신뢰도에 따라 크게 요동치는 편입니다.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면 믿을 건 변하지 않는 금뿐이거든요. 그렇다면 최근 금값의 ‘광란의 질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인의 선전 문구처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들고 있는 걸까요?
금값과 미국 패권의 깊은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첫 사건은 1970년대에 일어났습니다. 앞서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4년 결성된 브레턴우즈 체제하에서 미국 달러는 금과 연결된 유일한 기축통화였는데요. 미국은 금 가격을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하고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했습니다. 고정환율제하에서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는 전례 없는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중후반 상황이 바뀝니다. 린든 존슨 행정부가 빈곤 퇴치와 도시 개발을 위해 복지 지출을 늘린 상황에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국가 재정이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달러를 엄청나게 찍어냈는데요. 금 보유량에 비해 시중에 풀리는 달러가 과도하게 많다는 것을 느낀 영국과 프랑스 등은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미국에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예고 없이 TV 특보를 통해 ‘금 태환 중단’을 발표합니다.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세계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고정돼 있던 ‘1온스당 35달러’의 벽이 깨지자 금값은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며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요국들이 금에 연동돼 있던 고정환율을 포기한 1973년 금값은 106달러까지 뛰어올랐고, 1980년에는 금값이 무려 850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1971년 ‘닉슨 쇼크’ 발생 직후부터 약 8년 반 사이 기록된 금값 상승률은 2,328%(연평균 상승률 42.5%)에 달합니다.
금값 폭등과 함께 경제에는 침체가 찾아옵니다. 1973년 제1차 오일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이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역성장했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수치화하기 위해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만든 ‘경제고통지수’는 당시 10년여간 10.0을 훌쩍 넘었고, 1980년대 초엔 21.98까지 치솟으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참고로 코로나 시기 셧다운으로 인해 가장 높았던 경제고통지수가 15.0 수준이었고, 지난해 평균 고통지수는 미국이 12.4, 한국은 9.8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의 불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닉슨 쇼크 이후 붕괴 위기에 처했던 미국의 달러 패권은 돌파구를 찾습니다. 바로 석유입니다. 1970년대 미국은 원유 결제 대금을 미국 달러로만 받도록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약을 맺습니다. 석유를 기반으로 경제 발전을 이뤄야 하는 모든 국가는 미국 달러에 종속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페트로달러 체제).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에도 미 달러가 계속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죠.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미 달러 패권에 또다시 상처를 입혔습니다. 30여 년간 쌓아온 ‘달러 자산은 안전하다’는 시장의 믿음이 순식간에 깨진 사건입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미국 금융 상품이 순식간에 무가치해질 수 있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줬고, 사태 해결을 위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꺼내든 양적완화(QE) 처방은 달러 가치를 무너뜨렸습니다. 자연스레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다른 국가의 자산 가치는 함께 추락했죠.
당시에도 금값은 한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2007년 초 600달러 수준이었던 금값은 하반기가 되자 800달러를 돌파했고, 2008년 3월에는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결국 9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본격적인 금융 위기가 시작되죠. 2010년 세계 중앙은행들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금을 ‘순매도’에서 ‘순매입’으로 전환합니다. 201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직후엔 달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금값이 1,9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약 4년 만에 금값이 3배나 오른 겁니다.
그런데 최근의 금값 상승 추이는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당시 연간 최고 상승률은 위기 직전인 2007년 기록한 31%였는데, 지난해에는 두 배 넘는 64%를 기록했거든요. 1979년(126.5%) 이후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연간 상승률입니다.
이번 ‘슈퍼 사이클’의 시작은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보는 분석이 많습니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를 동결했는데, 이는 ‘달러의 무기화’ 논란을 촉발합니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손에 쥐고 있는 달러마저 못 쓰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건, 달러를 가지고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중국과 인도 등은 이때부터 달러를 팔고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금값은 1,600~1,80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본격적인 금값 폭등은 2024년부터입니다. 미국 국가 부채가 34조 달러를 넘어섰고, 연간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이 국방비를 넘어섰습니다. 미국이 이를 갚기 위해 고의적으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죠.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페트로달러 체제가 50년 만에 막을 내린다는 소문에 우려는 더욱 커졌습니다. 사우디가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도 원유값을 받기 시작하면 달러 가치는 더 내려가니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투자자들이 달러를 팔고 금을 사들이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조치와 그린란드 점유 논란, 연준 금리 인하 압박 등 지난 1년간 예측 불가능한 충격이 몰아치면서 달러 가치가 10% 이상 하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지어 지난달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해 “좋은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달러 가치는 2022년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달러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겹치면서 금값은 수직 상승했습니다. 2024년 2,000달러대 초반에서 달리기 시작한 금값은 2025년 3월 3,000달러를, 10월엔 4,0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지난해 1년간 금값의 신고가 경신만 무려 53번입니다. 올해 들어서도 금값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 결국 지난달 26일 5,000달러 선까지 넘어섰습니다. 각국 중앙은행과 기관은 물론 개인 투자자들까지 몰려든 ‘패닉 바잉’의 결과입니다. 도이치뱅크는 올해 금 가격이 6,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고, 모건스탠리는 하반기 5,700달러를 전망했습니다.
역사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는 하나의 시나리오는, 달러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금값이 폭등하면 그 뒤에 경제 침체가 찾아올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캠벨 하비 미 듀크대 경영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11차례의 주요 주식 시장 폭락 중 8번에서 금 가격 상승이 관측됐다고 합니다.
미국 금융가 피터 시프는 지난달 28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금 가격 급등을 짚으며 “우리는 현재 2008년 금융위기를 ‘아주 사소한 일’처럼 보이게 만들 경제 위기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서브프라임 시장 붕괴 직전 2007년 상황과 지금이 똑같다”며 “세계는 이제 미국의 발밑에서 카펫을 빼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달러가 붕괴하고 금이 다시 그 지위를 차지하며,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이라는 거죠.
반면 여전히 달러가 흔들릴지언정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만큼 경제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위기를 압도할 것이라고 보는 거죠. 최근의 금값 상승이 하나의 유행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로빈 브룩스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NYT)에 “금융시장은 패션 같은 것”이라며 “(금값 상승은) 나팔바지가 다시 유행하는 것과 같다”고 언급했습니다. 과연 이 광란의 끝은 어디로 이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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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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