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재기발랄 흥미로운 포스트들은 주로 페이스북 등 같은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를 이용하는 지인들의 공유로 접하게 된다. 그런 포스트의 소재는 정치, 문화, 과학, 생활 등 실로 다양하고, 대체로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신선하거나, 때로는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글들이기에 개인적으로는 그 ‘신박함 (신기함을 일컫는 온라인 용어)’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최근에 감탄했던 온라인 포스팅은 2000년 이후 상영된 조선시대 배경의 영화와 드라마들(명성황후, 왕의 남자, 관상 등)을 작품 속 시대적 배경 순서와 개봉시기에 맞추어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그래프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포스팅은 알갱이가 꽤 작은 특정과자의 개수를 세는 프로젝트로 누가 봐도 많은 시간과 공이 들었음이 분명했다.
이렇게 온라인 상에 떠도는 흥미로운 그러나 종종 쓸데없는(?) 포스트를 공유하며 흔히들 덧붙이는 표현이 ‘잉여력의 끝판왕’이다. ‘잉여’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런 포스팅을 위한 프로젝트들이 경제적 생산 활동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 때문이다.
최근 시작한 방송 프로그램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도 ‘잉여’라는 단어가 들어갔는데, 여기서 잉여는 사회 경제적으로 주류가 아닌 사람들을 말하고 있으며, 방송 주제는 그런 비주류들이 떠나는 배낭여행이다.
소설『잉여인간』이 발표된 건 한국전쟁 후인 1958년이었지만, 잉여라는 단어가 요즘 유난히 자주 자조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높은 청년 실업률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경제적 생산 활동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재미와 감탄만을 목적으로 포스팅을 만드는 것 같은 잉여 활동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순수한 내면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한 자아실현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아등바등 먹고 살기 위한 일도 아니고,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는 일도 아니고, 학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만들어내는 창조적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물론 온라인 상에서 주목 받고자 하는 심리적 동기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 역시 경제적 이득과는 무관하게 내적 동기에서 발현한 것이니 과하여 부작용이 따르지 않는 한 긍정적이다. 그래서 나는 실질적으로 잉여 활동을 하며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그 산물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밥벌이와 상관없는 잉여적인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닌가 싶다.
찬사를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창조적 잉여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일자리 없이 경제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스펙을 쌓고 자기소개서를 들이밀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인간성 잃은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며 살고 있는 어깨 처진 20-30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안타깝다.
남들의 ‘잉여’가 만들어낸 산물을 보고 겨우 위로받고 쓴웃음 지으며 하루를 버티는 이 세대는 어쩌면 불철주야 산업일꾼으로 뛰던 세대보다 더 슬플지 모르겠다.
일자리 못 구해 어쩔 수 없이 잉여인간 이름표를 받는 사회가 아니라, 진정한 잉여활동을 통해 밥벌이와 상관없는 즐거움을 꾀하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여전히 먹고 살만한 배부른(?) 세대의 바람인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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