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필종 ‘창살’
남대문 상가에서 지게 품팔이 하던 남자
폼 나게 살겠다고 처자식 데리고 건너 온 미국
주말 땡볕 공터에다 천막치고 신발 펼친다
이국인의 눈에도, 그의 눈에도 짙은 눈썹의 낙타
닳아빠진 신발 벗겨내자 땀에 젖은 이십 불짜리
코 잡고 찡그리자 흰 이 드러내며 내미는 손
오징어 말리듯 벤 트럭 천정에 걸어놓고 말린다
하나 둘 열이 되면 인턴과정 밟는 아들 도구를 사고
스물에 스물이면 한 달 월세 내고 생활비가 되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하나 둘 옆머리부터 희어진 머리
환갑 지나 천막 노점을 접고 상가에다 점포를 차렸다
살 만하니 불쑥 찾아온 불청객 돌볼 겨를 없던 몸 덮쳐도
왼쪽 다리 절뚝이며 뒤틀린 입에서 반쪽은 살았단다
창살로 만든 가게 문이 비틀거리며 아침 열 시를 맞는다
/ 한길수(1962- ) ‘낙타와 상인 1’ 전문
.......................................................................................................................................................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새 삶의 뿌리를 내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낙타가 사막을 걷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으로 시작한 이민생활이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나 부와 건강과 명예를 누리야만 성공한 삶은 아니다. 열심히 산 삶은 그 자체로 모두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다. 인생길 중 어느 한 때 병마가 찾아왔다하여도 슬퍼하지 말자. 최선으로 살아온 이웃 아저씨, 오늘 하루도 마음 당당하고 환하게 시작하시길 빈다.
<임혜신/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