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한 채 2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같은 날 영면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북 포항에 사는 김달선(91) 할머니가 11일(이하 한국시간) 오후 9시15분께 포항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보다 앞서 같은 날 오후 8시40분께는 위안부 피해자 김외한(81) 할머니가 경기도 광주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이들이 별세함에 따라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단 50명으로 줄었다.
김달선 할머니는 1925년 경북 포항시 북구 환여동에서 3남3녀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19살이 되던 해인 1943년 어머니를 따라 흥해읍에서 청어를 팔던 중 길거리에서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미얀마로 가는 배에 태워졌고 그곳에서 여자로서는 차마 겪을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며 자궁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가족들은 김 할머니가 평소에 “지금도 일본놈들이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라고 하는데 죽기 전에 자꾸 이야기를 해야 돼. 그래서 일본놈들의 사과를 받아야지”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고 전했다. 또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 나이가 가장 어렸던 김외한 할머니는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5년 2월 11세 나이에 일본 홋카이도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다고 나눔의 집은 전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 “그 죽일 놈들이 어린애를 데려다가 무자비하게 능욕했어. 어렸을 적 함께 놀던 친구들은 모두 끌려가서 죽고 나 혼자만 살아 돌아왔어”라며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원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가주한미포럼은 12일과 13일 오후 3시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에 이번에 별세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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