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36년 전 실종된 6세 소년 이튼 패츠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던 용의자 페드로 에르난데스(54)의 재판에 대해 ‘심리 무효’를 선언했다. 배심원단이 18일간 논의를 거듭했지만 의견 불일치로 유무죄를 단정하는데 합의하지 못한 결과에 따른 판시였다. 12명 배심원 중 11대1로, 한명의 배심원이 용의자의 정신병력과 환각증세 등을 이유로 그의 자백의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유죄평결에 동조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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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25일 맨해튼에 거주하던 초등학교 1학년생 이튼은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선 후 사라졌다. 집에서 두 블럭 떨어진 스쿨버스 정류장으로 엄마의 보호 없이 혼자서 걸어간 첫날이었다.
이튼의 실종사건은 전국언론에 보도되었고 300여명의 수사 인력이 투입되는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었으나 별 성과가 없는 채 36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튼의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튼은 2001년 법적으로는 사망 처리되었다.
1982년과 86년 두 차례나 이튼의 납치살해 용의자로 체포되었던 아동 성범죄자 안토니오 라모스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후 덮여있던 이튼 실종 케이스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2012년 에르난데스가 체포되면서였다. 실종 당시 이튼의 집 근처 잡화점에서 일했던 에르난데스가 친척들에게 “뉴욕에서 아이를 해쳤었다”고 말했다는 제보에 의해서였다.
에르난데스는 경찰조사에서 자신이 이튼의 목을 조른 후 비닐봉지로 싸고 상자에 담아 거리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의 변호인은 IQ가 70에 불과한 그는 수년 동안 항정신병약을 복용한 정신질환자로 그의 ‘자백’은 환각에 따른 상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에르난데스 자신도 금년 1월 시작한 재판과정에서 무죄라고 자백을 번복했다.
재판과정을 지켜본 이튼의 아버지 스탠리 패츠는 에르난데스가 아들을 살해한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너무 실망스럽다. 우리의 긴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원의 심리무효 선언 후 에르난데스는 다시 구금상태에 놓였으며 재판부는 6월10일 재회동할 예정이다.
이튼 사건은 부모들이 자녀를 혼자 집밖으로 내보내지 않게 하는 등 미 전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으며 1983년 레이건대통령은 이튼이 사라진 5월25일을 ‘실종 어린이들의 날’로 제정했다. 실종아동 찾기 캠페인의 일환인 우유팩 사진 인쇄의 첫 주인공이 된 것도 이튼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실종 어린이 중 한명인 이튼의 살해용의자 재판을 계기로 묻혀 있던 유사한 사건들도 재조명을 받고 있다.
▲ 라이언 자매
워싱턴 D.C. 교외에 살던 쉐일라(12)와 캐더린(10) 라이언 자매가 사라진 것은 1975년 3월25일, 집에서 반 마일 거리의 샤핑몰에 갔던 두 소녀는 다시는 집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샤핑몰에서 이들 자매가 어떤 남자에게 말하고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알려진 마지막 행적이었다. 국가방위군까지 투입된 수색이 펼쳐졌으나 이들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는 경찰이 이 사건 관련 용의자에 대해 밝혔으며 이 케이스를 대배심이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조니 고쉬
주근깨 얼굴의 조니 고쉬(12)는 1982년 9월5일 이른 아침 신문배달을 나갔다 사라졌다. 아이오와 주 웨스트 디모인에 살던 평범한 소년 조니는 우유팩에 사진이 실린 두 번째 실종 어린이가 되었다. 함께 신문을 배달하던 친구가 조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타주 번호판 자동차를 탄 낯선 남자와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경찰에 아들의 실종을 신고했으나 72시간이 지나야 ‘실종’으로 간주된다는 무성의한 답변에 분노한 어머니 노린 고쉬는 그후 아이오와에서 어린이 실종을 즉각 수사하도록 규정한 법이 통과하는데 앞장을 서기도 했다.
▲ 니콜라스 바클레이
1994년 6월13일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집 동네에서 농구를 하던 것을 마지막 모습으로 남긴 채 푸른 눈의 금발 소년 니콜라스 바클레이(13)는 귀가하지 않았다. 3년 후 1997년 스페인에서 자신이 니콜라스라고 주장하는 한 청년이 성 매매단에서 도망쳤다며 경찰에 연락해 왔다. 그는 미국으로 데려와졌고 공항에서 바클레이 가족의 따뜻한 마중을 받았다. 청년은 머리빛깔도, 눈 빛깔도 다르고 외국인 억양을 썼는데도 가족들은 그를 바클레이라고 인정했다.
1년 후 FBI는 지문조사를 통해 스페인에서 온 ‘니콜라스’가 프랑스의 사기꾼 프레데릭 피에르 보르댕이라고 밝혔으며 보르댕은 자신을 사랑해줄 가족을 갖기 위해 실종아동으로 사칭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2012년 ‘사기꾼(Imposter)’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보르댕은 6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후 유럽으로 돌아갔는데 또 다른 실종아동을 사칭하다 체포되었다. 니콜라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 제이콥 웨터링
11세 조이콥 웨터링은 형과 친구 등 3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다가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 1989년 10월22일 밤 9시께 미네소타주 세인트 조셉 자기 집 근처에서였다. 복면을 하고 총을 든 남자가 나머지 두 아이들에게 가라고 하면서 제이콥을 데리고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한 채 25년이 지난 작년 경찰은 제이콥의 납치가 인근에서 발생한 5명 소년들에 대한 유사한 공격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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