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 복판에서 생각이 비파나무 젖은
잎사귀처럼 너울거릴 때가 있다
비파, 비파, 비파, 본 적도 없는 악기를 켤 때가 있다
비가 오니 내가 멀리 있다
고대 인도의 소가 되어 무거운 짐 달구지에 싣고
일 유순 이 유순 스파게티 전문점으로부터
멀어진다 멍석을 말듯 안쪽으로 안쪽으로
나는 걸어 들어온다 찻물을 끓일 때도 밥을 지을 때도 늘
웅크리고 있던, 불안해하던 오른쪽 발만 데리고 온다
나와 상관없는 지혜의 길고 찢어진 눈동자가
오래 오래 바깥을 응시할 때
도너츠 가게와 막걸리 주점과 재즈 바와 택시와
설탕으로 만든 사람들이 북적대는 제 4의 공간이
인도의 시타람 같다
누가 야차인가? 당신인가 나인가
날마다 고층 빌딩에서 고공 고행하는 자들인가
늙은 아소카 나무 옆구리에서 태어난 자들은
열 두 시간을 기차 바닥에 숲속의 수행자처럼 앉아 있었다
/ 권현형 (1966- ) ‘비파 비파 비파를 켤 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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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대는 서울의 한 복판에서 누가 인도를 연상한다. 한 번도 켜보지 않은 비파를 켜고 주점과 재즈 바를 거닐며 고대의 소가 되어 수레를 끄는 상상을 한다. 인도가 아닌 거리에도 야차는 있고 수행자는 있으리니, 서울의 야차는 누구이며 수행자는 누구인가. 오버랩 되는 공간, 서울도 아니고 인도도 아닌 곳. 훈훈한 비의 입김 속에 비파나무와 아소카나무가 너울대는 환몽의 나른한 정경이다.
<임혜신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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