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의 전면적 양적완화 정책은 시행과 함께 그 효과를 두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돌지 않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는 유동성의 덫에 빠질지, 아니면 마중물로 펌프물을 끌어내듯 경제 활력의 돛을 올릴지 논쟁은 이미 시작됐다.
◇돈 풀면 경제 돌아간다 ‘선순환론’
양적완화에 관대한 비둘기파는 당연히 돛을 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초저금리를 유지한 채 국채 매입을 통한 전면적 양적완화로 유동성을 늘리면 국채를 포함한 다른 채권 가격이 상승한다.
그러면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모든 투자자, 연기금, 보험, 펀드 등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회사채나 주식 시장도 투자처로 챙겨보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이들 자산 가격도 오르게 된다.
초저금리 환경에서 이런 영향이 겹쳐 은행과 기업은 쉽게 자금을 굴리고, 정작 돈이 필요한 이들은 자금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비둘기파들은 본다.
돈이 도니까 투자가 늘고 일자리도 증가하고 경제의 파이도 커진다는 합리적 가설의 선순환 논리가 동원된다. 맞물려 세수 확보가 편해지고 국가의 빚 부담도 줄어든다.
유로당 1.15달러대로 2003년 이래 최저를 기록 중인 유로화는 더욱 가치가 내려갈 것이므로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또한 득을 본다.
◇시중에 안 돌면 헛방 ‘낙관 경계론’
양적완화에 인색한 매파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인플레율이 마이너스로 나온 것은 유가 폭락이라는 외부효과 영향이 컸다고 본다. 유가 변수를 빼면 디플레에 빠지지 않았다는 판단으로, 상황인식부터 다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중심국 말고 그밖 주변국들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성장 조짐도 보이기 시작했다는 진단을 곁들인다.
이미 지속된 초저금리에다 양적완화까지 조금씩 이뤄져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이탈리아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1.62%라는 기록적 저금리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돈을 쉽게 끌어 쓸 수 있으니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주요국, 그리고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경제난 국가들의 개혁이 지체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부담을 나눠지기 싫은 독일이 양적완화를 완강히 반대해온 이유다.
유럽연합(EU)은 유로존 재정위기를 막으려고 안정성장협약이란 것을 맺고 있다. 협약은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와 누적 공공부채 비율을 각기 3%와 60% 미만으로 규정하고, 위반 때 제재를 가한다고 하지만 이들 국가가 제재를 받은 적은 없다.
2013년 ECB 공식 최종 통계 기준으로 프랑스는 이 비율이 각기 4.3%와 93.5%이며, 이탈리아는 3.0%와 132.6%인데도 제재는 없었다. 그리스는 무려 12.7%와 175.1%이다.
이뿐만 아니라 돈이 시중에 돌더라도 투자 이익이 기대만큼 되지 않으면 이른바 ‘투자 파업’이 일어난다. 대기업들이 사내 유보금만 쌓아두고 투자와 생산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에만 돈이 몰려 거품만 키워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다.
◇수혜 계층 편중되는 ‘불평등 악화론’
두 갈래의 예측이 부닥치는 가운데 양적완화의 빈틈을 파고들어 독일의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21일(현지시간) 미국의 국채 대량 매입 사례를 들어 "엄청난 사회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전하며 가격이 오르는 채권과 주식은 부자들이 가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함께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 영국 의회의 재무위원회도 2012년 예산보고서를 통해 양적완화가 가져온 자산가격의 상승을 지적하며 이들 자산은 부자들의 몫이기에 재분배 효과는 부자에게 유리하게 됐다고 밝혔다.
타게스슈피겔은 유로화 가치 하락이 석유, 식료품, 중간재 수입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유로화 약세를 타고 중국과 같은 신흥 경제대국이 경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다고도 내다봤다.
신문은 "풀린 돈은 결국 돈 많은 이들과 빚 많은 나라들로 가게 되는 것"이라고 촌평했다.
신문은 또 국채를 발행시장이 아니라 유통시장에서만 살 수 있도록 한 ECB 규칙과 관련해서도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어떻게 구별하느냐"고 반문하고 ECB가 매입 목표를 채우려면 발행시장에서도 사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리처드 발리 월스트리트저널 컬럼니스트는 ECB가 내놓은 양적완화 프로그램에서 19개 회원국 간 채권손실 위험분담 비율과 채권매입 주체를 설명한 내용이 혼돈스럽다며 "ECB의 양적완화는 500쪽 분량의 사용설명서 없이는 발사할 수 없는 바주카포"라고 비꼬았다.
ECB는 이날 19개 회원국의 중앙은행으로서, 특히 양적완화에 반대해온 최대 지분국 독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회원국간 적정한 위험분담 비율 등을 설정해 설명했으나 시장에서는 명료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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