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시는 둘째 이모, 사촌언니 그리고 초등학생 조카들과 조카들 친구들까지 미국에서 영어도 배우고 관광도 할 겸 잠시 와서 게티 박물관, 디즈니랜드, 헐리우드, 씨월드 등등 돌아다니며 이국적인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에 가이드 하는 우리가족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 며칠 전 저녁, 집에 함께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와 이모의 눈물 없이는 말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옛날 이야기들이 시작되었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많은 세월을 사셨던 엄마와 다섯 이모들과 막내 삼촌은 모이실 때마다 옛날 얘기에 눈물을 나누시면서 일종의 힐링의 시간을 형성하시는 것 같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맞다. 일곱 남매를 키우신 외할머니께서는 다섯째인 우리 엄마를 낳으시고도 먹을 것이 없어, 물 같은 죽만 드시면서 허기를 달래야만 하셨다. 영양실조가 심해서 눈까지 어두워진 이모를 위해 다른 건 줄 형편이 되지 않아 개구리 뒷다리만 모아 사골국처럼 끓여주셔야 했고 지렁이를 씻어서 폭폭 달여 주시거나 생쥐를 직접 잡아 구워서 먹여 단백질을 보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식구들은 논에서 거머리가 몸에 붙어 피를 흘리면서도 일하고 장작뭉치의 무게에 눌려 고개가 꺼져 한참 동안 목을 펴지 못하면서도 나무를 해 와야 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일손을 보태야 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게 붙잡히는 학창시절이었다. 이들은 그런 세상을 살았다. “그래도 엄마랑 이모들은 고생 끝에 이런 좋은 세상에서 자식들과 좋은 시간도 보내고 좋은 곳도 다니지만 55세에 일찍 몸져 누우시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하면 한번도 효도 받지 못하시고 돌아가셔서 불쌍한 마음뿐”이라고…… 엄마와 이모가 이야기 끝에 눈물을 훔치며 하신 말에 우린 모두 서로의 얼굴을 돌리며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시대 젊은이들은 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굶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건지 기억하고 이런 옛 시절을 내딛고 꿋꿋이 삶의 터전을 가꾸시는 이 세상의 수 많은 어머니들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도 되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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