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의 애잔한 음색으로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들으면 정처없이 떠도는 고달픈 삶을 사는 집시의 애수에 젖게 된다. 하지만 끝부분에 열광적인 춤곡이 흐를 때면 소유한 재산은 없어도 삶을 축제로 누릴 줄 아는 그들의 낭만과 여유가 느껴져 어느새 길 따라 떠나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가족과 멋진 집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꿈꾸며 성실히 일상의 틀을 지키는 사람도 가을이면 마냥 가로수길을 거닐어보고 싶어질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존재의 본질이 유한한 인생길의 나그네이기 때문 아닐까.
인생을 길에 비유한 영화나 시도 많다. 길 따라 플롯이 전개되는 영화장르인 로드무비는 인물의 감정과 태도, 방황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고전영화 <라 스트라다>에서 유랑극단의 젤소미나는 난폭한 차력사 잠파노를 사랑하고 나자레노는 순수한 영혼의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잠파노는 자신이 나자레노를 살해하는 장면을 보고 미쳐버린 그녀를 버린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통곡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회한뿐이다.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도 길은 길로 이어져 있어 한번 선택한 길을 되돌리기 어렵다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살아온 길에 대한 후회도 소용없다. 흐르는 강물처럼 현재진행형이고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인생길이지만 어떤 걸음으로 가는냐에 또하나의 선택이 열려 있다.
무작정 헤매며 갈 수도 있다. 목적이 있는 걸음도 두가지다. 그곳에 도착해도 먹을 것이 없을까봐 많이 이고 지고 무겁게 걷는 사람이 있다. 다른 선택은 길의 끝에 푸짐한 잔치상이 있다고 믿고 산딸기도 따먹고 들꽃도 감상하며 배낭 하나로 험한 산길도 가볍게 가는 것이다. 이런 걸음을 나도 걷고 싶다.
이번 주에 정든 사람들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하는 데, 버려도 또 나오는 많은 짐을 보며 쓸데없이 쌓아놓은 내 인생의 짐들을 반성했다. 우리 각자 나름의 인생역정을 담은 대하드라마 ‘길 위의 인생’의 주인공이다.
인생길에 신비가 있다면 물리적인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마음을 새롭게 돌이키면 주인공의 의지에 반응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점이다. 지쳐 주저앉았어도 다시 일어서서 전편보다 알찬 이야기로 드라마의 제2부를 이어가면 좋겠다. 낯선 앞길을 가벼운 설레임으로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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