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영국 전체를 지배하다 앵글로 색슨 족에 밀려 춥고 척박한 북쪽으로 쫓겨난 스코틀랜드 인들은 자존심과 독립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오랜 세월 영국의 통치에 신음하지만 1314년 로버트 브루스가 이끄는 군대가 배녹번에서 2배가 넘는 영국군을 물리치면서 독립을 획득한다.
그 후 300여년 동안 영국의 ‘작은 아우’로 뒷전에 밀려 있던 스코틀랜드는 아메리카 대룩 발견과 함께 몰아닥친 신천지 개척 열풍에 휩싸여 이에 나라의 명운을 걸기로 하고 1690년대 파나마 다리엔에 국부의 거의 전부를 쏟아 붓는다.
그러나 황무지에서 나오는 것은 없고 여기 정착한 사람들은 질병과 기근으로 거의 전멸하며 설상가상으로 1700년 스페인 군대가 침공하면서 스코틀랜드의 신대륙 개척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자존심을 버리고 영국과의 통합을 수용한 것은 독자적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1700년대 초 스코틀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지만 문맹률은 가장 낮았다. 스코틀랜드 개신교 지도자인 존 녹스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누구나 성경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며 어려서부터 모든 주민들에게 영어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다.
영국과의 통합 후 스코틀랜드 인들은 영국의 선진화된 문물과 풍부한 물자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였고 그 결과 불과 50년 뒤 유럽에서 가장 학문과 기술이 발달한 곳으로 탈바꿈했다. 프랑스 계몽철학과 쌍벽을 이루는 스코틀랜드 계몽 철학이 탄생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미국의 사가 아더 허만은 ‘어떻게 스코틀랜드인들은 현대를 발명했는가’(How the Scots Invented the Modern World)라는 책에서 현대 사회가 스코틀랜드 인들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다소 과장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크게 보면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선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가 스코틀랜드 인이다. 기차로 대표되는 운송 혁명과 함께 현대를 특징짓는 통신 혁명의 시작인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벨도 스코틀랜드 인이고 기차와 철로, 선박, 항공기의 필수요소인 강철을 만든 앤드루 카네기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경제학의 비조이자 시장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놓은 아담 스미스 또한 물론 스코틀랜드인이다.
세계 여러 나라 중 스코틀랜드로부터 가장 큰 빚을 진 곳은 어딜까.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정치 체제에는 스코틀랜드 계몽철학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 건국의 양대 기둥인 ‘독립 선언서’를 쓴 토마스 제퍼슨과 연방 헌법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의 선생이 모두 스코틀랜드 인이다.
‘독립 선언서’에 나오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진리가 자명하다고 믿는다”라는 구절은 ‘진리는 상식적’이라는 스코틀랜드 상식학파의 주장을 그대로 본 따고 있다.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압제에 대한 저항권을 주장한 사람은 스코틀랜드 계몽철학의 창시자이자 아담 스미스의 스승인 프란시스 허치슨이다.
매디슨의 스승이자 프린스턴의 전신인 뉴저지대 학장인 존 위더스푼은 스코틀랜드 철학을 미 지도층에 널리 퍼뜨렸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교육 제도와 교육 내용을 스코틀랜드 영향 하에 두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배녹번 승전 700주년을 맞아 영국으로부터 다시 독립하려던 스코틀랜드의 기도가 지난 주 수포로 돌아갔다. 많은 스코틀랜드 인들이 독립한 나라에 대한 열망을 아직도 품고 있지만 막상 떨어져 나갔을 때 과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할까에 대한 우려를 떨쳐 버리지 못한 것 같다.
1700년대 초 인구 100만 남짓에 불과한 스코틀랜드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광범위하며 깊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황금기 인구도 고작 수십만이었다. 큰일을 하기 위해 꼭 인구가 많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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