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라는 직업으로 수업을 가서 많은 이들의 생각을 듣고, 의논하는 삶을 살고 있는 요즘, 내가 제일 참을 수 없는 기분은 내가 너무 ‘무식’할 때인 거 같다.
예를 들면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어휘력을 구사하며 익숙지 않은 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아... 난 도대체 지금까지 뭐 했지?"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똑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관심이 많은 자와 아닌 자가 분명해지는 순간들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었던 나 자신이 떠오르곤 한다. 남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할 때 나는 한국 예능 등을 보며 노력하지 않았을 때 또한 생각난다. 이러한 것들이 나 자신에게 속일 수 없는 너무나도 명백한 진실이라 그 죄책감이 더욱 크게만 느껴진다.
예전부터 변화를 주기 위한 마음은 먹었지만 또 다른 핑계를 댔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내고야 만다는 나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작심삼일이 일상이 되었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근 몇 년간의 내 인생이 돼버렸다.
내가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은근히 모두 다 잘되는 현실에 점점 인센티브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노력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손을 놓아버린 것이 가장 어리석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는 애초에 물을 필요도 없다. 정확히 내가 그럭저럭한 삶에 만족하기 시작한 후부터이다. 내가 너무 무식하고 발전이 없는 것 같은 그 "참을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짧은 순간에 몸이 편한 것을 우선시했다.
작지만 강력한 기분을 마음속에서 손으로 가려도 보고, 덮어도 보고, 보자기로 싸 놓았다. 하도 많이 싸 놔, 흔한 솜뭉치 덩어리로 보이지만 저 안에는 내가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는 나를 죄책감에 들게 하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난 이제부터라도 내가 내 손으로 싼 그 보자기들을 하나씩 풀어내기로 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기에 설레는 마음보단 내가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과연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앞서지만 적어도 이젠 도망가진 않기로 한다.
더 이상 핑계 따윈 대지 말고, 나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앞에선 무식한 게 너무 싫다고 얘기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안 해서 뇌가 뚱뚱한 이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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