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드는 것이 개인인가 집단인가, 역사는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열려 있는 것인가는 오래된 역사적, 철학적 논쟁거리다. 한 때 서양에서 주도적 사조로 군림했던 마르크시즘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집단이며 그 방향은 이미 결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며 그 종착역은 공산사회라는 것이다. 개개인은 아무리 뛰어나도 그 순간 역사의 부름을 받고 시대적 소임을 다 하기 위해 나온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누가 어떻게 발버둥 쳐도 공산사회의 도래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폐기 된 주장이지만 한 때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에 혹해 목숨까지 바쳤다. 지난 13일 끝난 월드컵 대회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개인이며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결승전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그 며칠 전 열린 브라질과 독일의 준결승전이었다. 대회 당일까지 만도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브라질이 무려 7대 1로 지리라고 점친 사람은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브라질이 7대 1로 진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 밖에 있는 일이었다. 브라질이 북한을 상대로 해 7대 1로 이긴다는 것은 간혹 생각해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브라질이 7대 1로 지다니…이번 사태가 브라질의 간판스타 네이마르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 한다. 그만 있었더라도 브라질이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또 간판스타들이 어째서 천문학적인 돈을 받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네이마르 한 사람의 존재가 팀의 운명을 바꾸고 온 국민의 기분을 좌우한다. 적어도 스포츠에 관한한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음을 이 경기는 확인시켜 준 것이다.
네이마르가 나왔다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은 선수들 개인기가 뛰어나고 호흡도 잘 맞는 반면 브라질은 네이마르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 날 시합에서 부상당해 못 나온 사람이 네이마르가 아니라 독일의 클로제와 뮐러였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브라질이 네이마르의 개인기에 힘입어 선제골을 넣고 똘똘 뭉쳐 방어에 들어가고, 독일은 클로제와 뮐러 같은 뛰어난 공격수를 잃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득점하지 못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언론은 독일은 클로제와 뮐러 같은 특정 선수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으며 브라질은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도 강한 역시 ‘월드컵의 영원한 승자’라고 추켜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클로제나 뮐러가 아닌 네이마르를 부상시켰고 그 결과는 우리가 본 바와 같다.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위 ‘나비효과’의 존재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하면 미국에서 태풍이 분다”로 요약되는 이 효과는 세상만사가 얼핏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고리로 연결돼 있으며 그 중 하나를 건드리면 예기치 못한 결과가 벌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브라질과 독일 시합 전 네이마르가 부상을 입어 출전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네이마르는 물론 그를 부상시킨 선수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비고의적인 몸싸움 결과 네이마르는 척추에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부상을 입었고 그 결과는 브라질의 믿을 수 없는 참패였다.
이 경기는 브라질에게는 견디기 힘든 아픔이자 씻을 수 없는 치욕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째서 축구가 재미있으며 왜 월드컵이 가장 많은 인류가 시청하는 스포츠인가를 보여줬다. 때로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늘 강자가 이기고 예상대로만 진행되는 시합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다. 인생도 역사도 마찬가지로 누구도 내일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장담하지 못하며 그래서 사는 것은 흥미롭다. “공은 둥글기 때문에 차 봐야 안다”는 속담을 실감케 한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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