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여름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를 겪다 온지 알마 안되는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산호세의 기후가 천국이라 말하지만 난 산호세의 겨울이 너무 싫었다. 추적추적 비는 오지요, 바람은 불지요, 집안은 으슬으슬하지요, 나가자니 따수운 곳은 없지요. 부자들은 써머 하우스라는 걸 갖고 있다는데 나도 하와이에 집 한칸 있는 정도의 부자가 되어 매 겨울마다 이 괴상한 추위에서 도망갈 길은 없을까, 엔지니어로 사십년을 일해온 남편에게 스탁 벼락이 안 떨어지는 게 가장 섭섭한 때가 겨울이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은 이상하다. 하나도 안 춥더니,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한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 얼마간은 좋았는데 갈수록 사태가 심상찮다. 심상찮타 못해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하늘이 노할 무슨 몹쓸 죄라도 진게 있었나, 찬찬히 내 지난 해의 행적까지 되돌아 보게 된다.
지난 사십년간, 요세미티는 내 비밀의 뒷마당같은 기분을 주는 곳이어서 그 당장 그리울 때면 어쩌자고 그곳이 네시간이나 걸리는 먼먼 곳에 있나 통탄하다가도 이 광활한 미국 땅에서 옐로스톤이나 브라이스 캐년처럼 꿈같이 멀지 않고오직 네시간 밖에 안 걸리는 곳에 요세미티가 있다는 사실이 늘 감사 했다. 해마다 몇차례 다녀오다보니 가끔 ‘그동안 좀 뜸 하네. 며칠내에 오겠다는 맘을 먹으면 방값 깎아줄텐데.’하는 편지를 요세미티 공원측으로부터 받는다. 최근에도 그런 메일이 왔길래 남편이 그동안 수술하느라 고생한 내게 위로 차원의 출타를 마련해 주어 다녀왔는데, 맙소사, 하얀 거품을 뿜어대며 용트림하듯 달리던 계곡이 없어졌다. 가끔 여기저기 죽은듯 고요한 물구덩이가 여기저기 있을 뿐 물 흐르던 자리엔 뼈가 들어난 환자처럼 돌무더기만 내보이며 신음하며 누워 있는듯 하다. 폭포도 없어졌다. 이럴수가.. 십수년전 홍수가 나서 여기까지 모두 물로 뒤덮혔었다는 표지기둥은 여전히 신기한데 물은 없다. 그렇구나, 자연이란 게 이런 거구나.
언제나 그곳에 있는 건줄 알았는데 하늘이 허락해야 갖을 수 있는 거였구나. 날이 너무 따뜻해 일찍 잠이 깬 곰들은 먹을 것이 없어 사람 있는 곳으로 내려온단다. 지난 해, 나보다 한참은 더 늙어보이는 미국 할머니가 늠름한 자태로 그 차가운 계곡물에서 수영을 하길래 대한의 자손인 내가 누구만 못하랴, 하고 대~한민국! 을 외치며 드디어 나도 요세미티 계곡에서 성공적으로 수영을 해냈다. 하도 신나고 내가 대견해서 올해도 다시 한번 해내려는 각오를 단단히 하며 캠핑갈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올해 요세미티는 접어야 할 것 같다. 물없는 요세미티는 마치 중병에 걸려 투병중인 환자를 방문하는 것처럼 맘 아픈 일 같다. 작년, 애지 중지해가며 잘 자리 잡으라고 노래까지 불러주며 심은 석류나무가 순하고 여린 순을 몇개 내밀더니 그냥 말라버렸다. 재미삼아 키우던 깻잎과 고추, 오이와 호박을 물 때문에 올해는 걸러야 할 것 같다. 북극곰은 얼음이 없어서 녹아가는 한조각의 얼음에 의지해 죽을 자리 찾아 하염없이 흘러가고 그걸 보는 손자는 불쌍하다고 운다. 지구가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걸까. 나야 오래 살아봐야 거기서 거기일테니 나 모르면 그만이다 할수도 있겠지만 내 손자는 아직 앞날이 한참인데 신음하는 이 지구를 어떻게 달래며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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