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동물 사랑은 어릴 때부터 좀 유난했다. 동물을 무척 좋아한 부모님 덕분에 개, 고양이, 잉꼬 새, 하얀 토끼, 기니피그, 물고기, 거북이, 심지어 올챙이까지 안 키워본 동물이 없을 정도였다. 새로 태어나는 꼬물거리는 강아지를 받아보고, 달걀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는 과정을 보고, 올챙이가 다리가 나오고 개구리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신비함을 배웠고, 보내기 싫어서 아무리 울고 불어도 때가 되면 헤어져야 하는 죽음의 절대성 앞에 당혹감과 함께 배신감도 느껴봤다. 하지만 그러한 이별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 후에 깨달은 것은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삶은 다시 이어지고 보내야만 했던 그 가슴 아픈 사랑은 함께했던 기억을 추억할 때 나의 마음 한쪽을 보드랍게 어루만지며 내가 원할 때마다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이년쯤 전에 우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던 작은 요크셔테리어가 죽었다. 아이들과 내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회사도 못 나간 남편이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정원에 나가서 나무 밑에 묵묵히 작은 구덩이를 파주었다. 차가운 가을비가 우리 머리를 적시며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던 그 작은 장례식은 생각하면 지금도 맘 한구석이 서운하고 아리다. 하지만 이 가슴 저린 이별을 하면서 아이들은 내가 그러했듯이 자연스레 사랑하고 헤어지기를 배웠다. 추억을 만들어가고 삶을 같이 나누던 누군가를 보낸다는 것은 참 힘들고 속상한 일이지만 언젠가 헤어짐이 준비되어있는 우리의 인생에서 그 마무리를 어떻게 맞이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허함을 어떻게 이겨내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아이들은 사랑하던 애완동물을 보내면서 천천히 배워갔다.
인사도 못 하고 떠나신 친정 아빠, 암과의 투병을 참 용감하게 치러내신 시아버님, 우리 아이들을 무척 예뻐해 주시던 시할머님 또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갑자기 보내면서도 매번 적응이 안 되는 그 지극한 슬픔을 딛고 그분들과 함께했던 좋은 추억과 사랑을 되새김질하며 다시 행복할 수 있음은 고맙게도 함께 삶을 나눠주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물들 때문이다.
함께 있을 때에도 헤어져 있을 때에도 이렇게 많은 추억과 위안을 주는 그들에게 오늘도 감사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