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서 쓰는 연필과 복잡하지만 왠지 모를 설렘을 주는 헌책방. 모두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단어들이다. 이런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손편지를 받아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하면 아마 초등학생일 때가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 생일, 축하, 화해의 순간을 모두 손으로 쓴 편지와 함께했다. 그런 편지를 받는 순간 느끼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은 느리고 촌스러운 손편지의 매력이다. 예상치 못한 손편지를 받았을 때, 어렸을 적 다니던 헌책방이 아직도 있을 때, 학교에 내가 앉았던 책상이 그대로 일 때. 이 모든 순간은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그 순간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설렘과는 조금 다르다.
세상은 점점 모든 일에 속도를 높이며 효율성을 중요시한다. 더 이상 손편지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다. 편지보다 빠른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던 삐삐는 통화를 주고받는 핸드폰으로 발전하고 그 핸드폰은 하나의 작은 컴퓨터가 되고 또 그 안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공유하며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 작은 화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과 소비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더 확연하게 느껴진다. 가령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앉아있는 승객들뿐만 아니라 서있는 승객들은 서로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그 작은 화면에서 바삐 움직인다.
오래 전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은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 핸드폰이 없던 시간은 어떻게 존재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답답함이 느껴져서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우리 반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학생은 없었다는 건 기억한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짧은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히려 전화가 없던 시절이 더 애틋한 기억으로 남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본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래의 우리는 컴퓨터로 집에서 쇼핑, 식사, 그리고 사회 활동 등 모든 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서 우리가 겪을 외로움 또한 그 미래의 문제점으로 그려졌다. 거의 10년이 지나고 우리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다니면서 전세계적으로 첨단기술은 무궁무진하게 발전했고 한국이 IT국가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그 미래에 대한 우려도 현실이 되었다. 전화나 SNS를 통해 사람들과의 교류의 장은 넓고 다양해졌지만 그 교류의 빈번함의 비해 소통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그 기술력이 행복까지는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첨단 IT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 또한 많아지고 그 발전 속도에 발맞춰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빠르고 또 빠른 사회에서 시계가 패션이 아니고 시계였던 그 시절이 아득히 먼 옛날이 되고 있다. 가끔은 스마트한 사회에서 벗어나 핸드폰을 손에서 놓고 사람들과 눈을 보며 상대방과 나의 감정을 느끼면서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순간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