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같이 땅이 넓은 나라에서는 비행기를 통한 이동이 필수적이다. 항공 관제사가 일을 하지 않으면 비행기가 뜰 수 없고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미국 교통은 사실상 마비된다. 과거 민주당 공화당 행정부를 가리지 않고 이들 눈치를 보며 하자는 대로 다 들어준 것은 그 때문이다. 1968년 창설된 미 항공 관제사 노조는 1970년 집단 병가 등을 통해 힘을 과시하며 높은 봉급과 유리한 근로 조건을 누려왔다.
카터 행정부도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이 차지 않은 관제사 노조는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을 지지했다. 이야말로 관제사 노조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자신들이 지지했던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자 이들은 1981년 8월 3일 봉급 인상과 주 32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레이건이 관제사 파업을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언하고 직장 복귀를 명령했을 때도 이들은 코웃음 쳤다. 제아무리 레이건이라도 설마 항공대란을 각오하고 1만3,000명에 달하는 관제사를 모두 파면할 수는 없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사람 잘못 봤다’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있는 모양이다. 레이건은 기한 내 복귀하지 않은 관제사를 전원 파면하고 이를 은퇴 관제사, 군인, 연방 항공국(FAA) 매니저, 견습 관제사 등으로 대체했다. 파면 당한데다 공무원 고용까지 종신 금지된 관제사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다. 공무원 파업은 불법으로 명백히 규정돼 이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관제사 집단 파면은 레이건 행정부의 성격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계기가 됐다. 앨런 그린스팬 전 FRB 의장은 “관제사 파면이야말로 레이건 행정부 국내 정책 중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관제사 자리를 가지고 장난치려다 혼이 난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오바마다. 예산 자동 삭감을 일컫는 시퀘스터로 연방 예산이 4% 감축되자 오바마의 지휘 감독 아래 있는 FAA는 10%의 관제사에게 무급 휴가를 명령했다. 이 10%의 인원 감축으로 미 항공기의 40%가 운항에 지장을 받았다. 4% 예산을 줄이는데 40% 항공기가 지연됐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치에 맞지 않는데도 오바마 행정부는 시퀘스터 규정이 엄격해 다른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연방 의회가 이런 핑계를 대지 못하게 예산 감축 재량권을 행정부에 주겠다고 제의하자 오바마가 즉시 거부한데서도 알 수 있다. 시퀘스터가 시행되면 재난이 온다던 오바마로서는 이로 인한 고통을 극대화해야 체면도 서고 향후 의회와의 협상에서 말발이 선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 FAA 직원은 비밀회의에서 항공기 연발착을 극대화해 국민들에 최대한 고통을 주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자 연방 상원은 관제사 인원 감축 나흘 만에 FAA에 재량권을 줘 관제사 무급 휴가를 철회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연방 하원은 다음날 361대 41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상하원 의원들이 비행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미국인들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보통 때는 빙하 속도로 움직이는 연방 의회가 이처럼 번개 같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200년 미 역사상 드물다. 오바마는 이 법안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는데 좋아서라기보다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뒤집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FAA가 사기업이고 적자가 나 인원 감축이 불가피했다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침을 세웠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은 손님마저 떨어져나가 아주 문을 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FAA의 행태를 보면 미국도 캐나다와 독일, 프랑스, 호주와 50개 다른 나라처럼 FAA를 폐지하고 민영 항공관제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오바마는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 시퀘스터 발동과 국정 2기 주요 목표로 내세웠던 총기 규제 무산, 그리고 이번 FAA 망신으로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으로는 그런 꼼수 말고 대국적으로 정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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