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하지 무라트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러시아 돼지들을 죽였는가를.” 체첸 반군 지도자를 소재로 한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마지막 작품 ‘하지 무라트’의 한 구절이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그것은 증오가 아니었다. 그들은 러시아 개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돼지와 개는 물론 인간이다. 체첸 인들이 러시아 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70대에 시작해 죽기 얼마 전 완성한 ‘하지 무라트’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비평가들 사이에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읽을 만한 책은 모두 읽었다’는 말을 듣고 있는 비평가 해롤드 블룸은 ‘서구의 성전’이란 책에서 “‘하지 무라트’야말로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는 톨스토이 문학은 체첸에서 시작돼 체첸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체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20대 초 러시아 장교로 이곳에 파견되면서부터다. 대학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교수들로부터 “배울 의사도 능력도 없는 학생”이란 평을 들은 그는 전쟁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제대로 배우게 된다. 이 때 자신의 생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쓴 ‘유년 시대’는 그의 이름을 러시아 문단에 알린 첫 작품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하지 무라트 이야기도 이 때 들었다.
그는 러시아 군인이었지만 시종일관 러시아에 의해 부당하게 침략당하고 고통 받는 체첸 편을 들었다. 그 결과 그는 체첸 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러시아 작가가 됐다. 90년대 소련이 망하고 체첸이 독립을 선포한 후 이를 장악하려는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체첸 전체가 초토화 됐지만 체첸에 있는 톨스토이 기념관은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2009년에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과 톨스토이의 고손인 블라디미르 톨스토이의 도움으로 새 기념관이 문을 열기도 했다.
톨스토이를 매료시킨 체첸 인들은 누구인가.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코카서스 산악 지대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인 이들은 100만이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통과 문화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고 독립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다. 13세기 몽골이 러시아 일대를 모두 정복했을 때도 체첸만은 독립을 지켜냈다. 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면서 독립을 되찾았으며 94년 러시아가 이를 다시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이다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당시 대통령이던 옐친은 독립을 인정한다. 그러나 푸틴이 집권하면서 이들의 결사항전에도 불구, 다시 러시아에 복속되고 만다.
그 후 이들은 극장 테러, 지하철 테러, 자살 폭탄으로 러시아 인들을 공격하지만 독립을 쟁취하는데 실패하며 이와 함께 회교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게 된다. 자신들의 독립을 짓밟은 러시아는 물론이고 이에 무심한 서방 기독교권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 것이다.
지난 주 보스턴 마라톤 테러라는 만행을 저지른 범인은 체첸 계 형제들로 밝혀졌다. 자세한 것은 더 조사를 해봐야 되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을 보면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범인이 회교 극단주의에 빠져 서방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주변 강대국에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다 오래 식민지 노릇까지 한 한국인들은 체첸 민족의 딱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화풀이를 애꿎은 미국인에게 한 것은 번지수를 매우 잘못 잡은 것이다.
체첸 반군 지도자였던 하지 무라트는 회교 극렬주의자인 체첸의 이맘 샤밀에게 등을 돌렸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돼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지구상에는 체첸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민족은 수없이 많고 이들을 만족시킬 방법은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톨스토이가 만년에 그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의 지난함에 대한 성찰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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