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우울증 완화·재활노력 등 삶의 의지 북돋워 병원들‘애완동물 출입 허용’갈수록 늘어나는 추세
1년 반 전 루스 런던은 악성 폐렴으로 플로리다 보카 래톤의 한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교도소에 있다고 믿었다. 고열로 인한 환각과 환청 탓이었다. 방황하는 루스의 의식을 되잡기 위해선 그녀와 현실세계를 연결해 줄 단단한 고리가 필요했다. 그 고리를 찾기 위해 궁리를 거듭하던 어니스트 런던(81)은 아내가 친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몰티즈 종 애완견 델리아를 떠올렸다. 눈처럼 흰 더부룩한 털에 앙증맞은 몸집을 지닌 델리아야말로 루스가 지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애완견의 주인 문병은 쉽지 않았다. 응급병동 담당의사의 사전 허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델리아는 병원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자원봉사자들과 병원 스태프는 담당의사의 허락보다는 애완동물의 출입을 금한 병원의 규정이 우선이라며 막무가내였다. 한참 동안 로비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어니스트는 응급병동 담당의사의 강력한 ‘지원사격’을 받아가며 간신히 저지선을 뚫을 수 있었다.
그들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 병실로 들어선 델리아가 루스의 손에 코를 부비자 환각의 세계를 헤매던 그녀의 의식이 현실세계의 자극에 반응을 보였다.
그것이 전환점이었다. 델리아의 문병 후 루스는 그녀가 어디 있는지 기억해 냈고, 그 때부터 증세가 뚜렷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델리아의 환자 방문은 보카 래턴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긴급히 소집된 대책회의에서 스태프들은 애완동물의 병원 출입을 금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때문에 델리아의 문병은 단 한 번으로 끝이 났다.
미국 전역의 병원들은 대부분 애완동물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하지만 최근 몇몇 진료기관들은 애완동물의 환자 방문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한 예로 메릴랜드 대학 메디칼 센터는 일정한 조건을 달아 이들의 병실 출입을 허용한다.
롱아일랜드 소재 노스쇼어 대학 병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임종을 앞두고 통증완화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애완동물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준다. 같은 계열에 속한 호스피스 인도 마찬가지다. 말기환자의 애완동물에게 가족의 자격을 부여한 셈이다.
애완동물 문병 요건은 병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큰 줄기는 비슷하다. 우선 담당의사의 사전 승인과 해당 애완동물이 예방주사를 빠짐없이 맞았다는 수의사의 확인서가 필요하다.
또 애완견의 경우 방문 하루 전에 털을 손질해 주어야 하고 병원복도를 지날 때에는 반드시 개 줄을 사용해야 하며 고양이는 병원을 드나들 때 반드시 조그만 상자나 우리 안에 두어야 한다.
개나 고양이가 환자의 침대로 올라가고 싶어 하면 먼저 커버부터 깔아주어야 하며 애완동물이 병원 안으로 들어오기를 꺼려하거나 겁을 집어먹을 경우 안내인은 이들의 입장을 불허하고 집으로 되돌려보낼 수 있다.
만약 병실을 다른 환자와 함께 사용한다면 애완동물 방문에 대한 사전양해를 구해야 한다.
지난 2008년부터 애완동물의 주인 문병을 허용해온 메릴랜드 대학 메디칼센터 목회 봉사 팀의 수잔 로이 목사는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굳이 문제를 꼽으라면 애완동물이 힘들어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문병 온 애완동물은 주인의 고통에 신체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예민한 놈들은 병원 방문 후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나야 비로소 원기를 회복한다.
애완동물이 환자들에게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따져보는 본격적 연구는 이제까지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2010년 인간과 동물의 상화작용을 연구하는 버지니아 커먼웰스 센터가 건강한 애완견 소유주 10명을 상대로 실시한 소규모 조사에 따르면 ‘인간의 가장 가까운 벗’인 애완견은 긴장을 풀어주고 혈압을 낮춰주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견공이 자신의 애완견인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실험결과 자신의 애완견이 아니더라도 동일한 스트레스 해소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애완견의 ‘치료효과’를 보여주는 일화는 수두룩하다.
보스턴 소재 헤브류 시니어라이프의 임상전문 간호사 앤 말러(57)도 골반골절로 입원한 자신의 아버지 역시 애완견 몰리의 ‘문병’에서 힘을 얻었다고 ‘간증’했다.
고령인 그녀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 후 심한 우울 증세를 보였고 재활치료에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말러는 아버지의 가라앉은 기분을 북돋워주기 위해 그가 사랑하는 스패니얼 종 애완견 몰리를 병실로 데려오려 했지만 병원 측의 ‘태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증세가 악화되자 말러는 병실이 아닌 로비의 후미진 골방에서 부친과 몰리가 딱 한 번만 재회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떼를 써 승인을 얻어냈다.
몰리가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침상에 앉아 잔뜩 들뜬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던 말러의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울음보를 터뜨렸다.
병원 안내인이 목에 맨 줄을 풀어주기 무섭게 주인의 품으로 파고든 몰리는 조그만 혀로 그의 눈물을 핥아주었다.
몰리의 방문 후 말러의 아버지는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태도도 한결 가벼워졌다. 하루속히 집으로 돌아가 몰리를 보아야 한다는 일념에 재활훈련에도 열심을 보였다.
기적 같은 변화를 목격한 헤브류 시니어라이프의 스태프들은 그 곳에 장기 입원중인 400여명의 노인 환자들을 위해 정기적인 애완동물 방문을 허용해 줄 것을 경영진에 강력히 요청했다.
지난 10월 91세를 일기로 타개하기 전까지 장장 7년간 방광암과 사투를 벌였던 해리 그랜디는 인생 말년이 된 지난해 무려 다섯 번에 걸쳐 장기 입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마지막 두 차례의 입원기간에 그는 애완견 미니의 정기적인 방문을 받았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주인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 요크셔 테리종인 미니는 ‘가족의 일원’으로 온종일 그의 곁을 지켰다.
미니는 이제 여주인 앤 그랜디(70)의 가장 가까운 친구다. 앤은 “미니가 내 마지막 순간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며 “미니는 내 자식”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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