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한국 드라마를 보며 갸우뚱했다. 진부할 정도로 항상 나오는 장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별로 없는 서민들은 고민이 있거나 괴로울 때마다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를 마신다. 반대로, 돈이 있는 사람들은 멋있는 바에서 고독하게 양주 한병을 언더락으로 마신다. 혼자 양주 한병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지만 완전 하드코어하다. 청춘의 젊은이들은 소박한 옥탑방에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친구와 옥상에 올라가 캔맥주를 마시고는 밤하늘에 자신을 격려하는 말을 외친다.
그리고 실연 후 여자들은 식탁, 또는 상에, 홀로 앉아 비빔밥을 먹는다. 어떤 여자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는 채로 깊은 생각에 빠져, 멍하게 멀리 어딘가를 주시하며 천천히 비빔밥을 입에 넣는다. 어떤 여자는 눈물하나 없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야무지게 양푼에 담긴 비빔밥을 먹는다. 어떤 여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억척스럽게, 목이 멜 때까지 비빔밥을 먹는다. 어떤 여자는 결국 한 그릇을 끝내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상황에 연관되는 음식들이 있다. 특히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서 나오는 음식에는 대부분 상징적이다. 대중적으로 이해되는 상징들이다보니, 결국 매번 쓰이게 되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실연 후 비빔밥을 먹는 여자들이다.
실연당한 여자들이 먹는 비빔밥은 그녀들의 자존심이다. 밥맛도 없으니 굶을 수도 있다. 며칠을 굶었다면 죽을 먹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니 배달을 시켜 먹을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이라면). 아니면 그냥 술로 또 한끼를 때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옵션들 중 고른 비빔밥은 마음이 견딜 수 없게 아프다고 몸까지 망가뜨리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밥, 영양을 주는 계란후라이와 각종 나물과 반찬, 매콤한 고추장에다가 참기름까지, 모두 모여 힐링푸드가 되는 것이다. 분명 부드럽게 넘어가지는 않지만, 꼭꼭 씹다 보면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그런 음식인 것이다.
물론 어제 내가 먹은 비빔밥은 이런 의미에서는 아니었다. 나는 가장 쉬운 한끼가 집에 있는 온갖 반찬을 다 섞어먹는 비빔밥임을, 그리고 설거지 할 그릇이 얼마 없을 거라는 것을 노렸던 것이다. 열무김치만 있었으면 정말 최고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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