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게 되며, 우리가 하는 것의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한 구절이다. 그는 자의 혹은 타의로 일상에서 행하는 수많은 선택과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 일련의 우연을 통해 얼기설기 완성된 주인공들의 삶을 그리며, 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실제 인간들의 삶을 총칭하는 ‘역사’를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특히 그는 이 책에서 날마다 중요한 선택을 강요받지만,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확신할 수도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묘사한다.
첫 인용구절에서 명기되었듯, 작가는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지각하며 자신의 삶을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만 여길 수 없는 현대인들의 태생적 의존성을 지적하고, ‘선택’이라는 행위에 투영된 인간 존재의 가벼움을 이야기한다.
그런 그의 결론은, 스스로를 옭아매 결국 인간을 비극으로 이끄는 ‘존재적 확신’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악함과 약함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종래엔 관조하는 태도를 갖자는 것이다. 이유는 그와 같은 상태에서 비로소 행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호소력 있는 주장과 제안임은 틀림없다.
실제 우리는 작은 선택을 앞두고도 쉽게 주위 사람들의 지적과 평가를 의식하고 때로는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그런 두려움이 일상의 크고 작은 거짓들을 낳고, 그 거짓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허탈감의 근거가 되며, 거창하게는 밀란 쿤데라의 표현처럼 결국 존재론적 회의까지 부추기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인식이 꼭 그의 말처럼 수동적 삶의 태도로 수렴되어야 할까.
극한 상황에서 분출되는 인간의 놀라운 잠재력은 영화와 소설의 감동적인 소재가 되곤 한다. 그만큼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 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시간은 계절처럼 순환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이왕 흘러 지나가버릴 시간이라면 반드시 관조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능사일리 없다.
먼저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찾고, 그 찾은 것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 이런 진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이에게 한낱 실패와 넘어짐이 대수일까.
최근 열린 2013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는 수상소감 말미에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끝없는 감사를 표하며 극중 자신의 대사 한구절을 외쳤다.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바에 소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매진해온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게 헌사된 이 찬사가, 문득 사방을 에워싼 두려움의 벽에 갇혀 밤낮 괴로워하는 우리들을 위한 응원가처럼 들린다.
“두려워하지 않기에 당신은 산을 넘는다. 두려워하지 않기에 당신은 용을 물리치고, 가치 있는 일이기에 당신은 불의 바다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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