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산 조망대
지난 주말 시애틀산악회의 정기산행 분위기는 무거웠다. 비 때문이 아니다. 겨울철엔 우중등산을 밥 먹듯이 한다. 그날은 이춘영 전 회장(2012년도)이 별세한지 이틀 후였다. 닉네임이 ‘산고파’일 정도로 산을 사랑했던 이씨는 희귀 암이 급전직하로 악화돼 반년여 만에 숨을 거뒀다. 그날 산악회원들은 발목까지 쌓인 눈 길을 ‘눈물 길’처럼 걸었다.
작년 이맘때 그 트레일을 눈신 신고 앞장서 걸어간 고인의 뒷모습이 떠올랐는지 회원들은 자주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그날 17명의 회원들이 느낀 비감은 180여년전 장장 1,000마일이 넘는 실재 ‘눈물 길(Trail of Tears)’을 엄동설한에 울며불며 노예처럼 떠밀려 걸어갔던 체로키 인디언부족 1만여명의 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디언 토벌대장 출신인 앤드류 잭슨은 대통령(7대)에 당선된 뒤 원주민들의 비옥한 땅에 눈독을 들였다. 쇄도해오는 유럽 이민자들을 정착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1830년 악명 높은 ‘인디언 이주법’을 만들어 캐롤라이나, 조지아, 플로리다 등 동남부 요지에서 수천년간 살아오며 문명화됐던 5개 원주민부족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로 내몰았다.
맨 먼저(1831년) 촉토 부족이 눈물의 트레일에 올라 연방정부가 현재의 오클라호마주 동부 미개척지에 설정한 ‘보호지(Reservations)’로 향했다. 그 뒤를 세미놀(1832년), 크릭(1834년), 칙카소(1837년)부족이 이었고, 맨 나중(1838년)에 인구가 가장 많았고 문명개화도 가장 앞섰던 체로키 부족이 560만달러에 조상전래의 땅덩어리를 빼앗긴 뒤 떠났다.
당시 눈물 길에 내몰린 체로키부족은 1만5,000여명이었다. 부족 소유의 흑인노예들과 일부 타민족들도 포함됐다. 살던 집은 모두 불태워졌고 가재도구는 연방 군인들에게 약탈당했다. 방한복이나 담요 휴대도 금지당한 채 한겨울에 황야에 내몰렸다.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일행 중 4,000여명이 굶어죽거나 동사하거나 홍역, 폐렴 등 전염병으로 횡사했다.
지난 70년대에 크게 히트한 팝송 ‘인디언 보호지(Indian Reservations)’는 바로 그 체로키부족의 한 맺힌 절규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박탈했고, 우리를 보호지에 가뒀네. 우리의 모국어를 빼앗았고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네…지금 우리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지만 내면 깊숙한 부분은 여전히 레드맨(체로키 인디언)이라네…우리는 체로키부족…”
체로키는 나은 편이다. 서북미의 쇼숀부족은 눈물 아닌 죽음의 트레일을 걸었다. 지난 1863년 1월29일 백인 민병대에 쫓기다가 300여명이 도륙 당했다. 최악의 인종참살 사건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베어 강 학살사건’의 150주년 기념식이 나흘 전, 산악회 이 전회장의 영결식이 열렸던 1월 29일, 아이다호주 프레스톤 인근의 베어 강변에서 거행됐다.
쇼숀이 학살당할 무렵 시애틀의 스쿠아미시 부족은 추장 시애틀(원래는 시앨트)을 따라 베인브리지 섬의 보호지로 내몰렸다. 반대로 제2차대전 때는 베인브리지 섬의 일본인들이 내륙 수용소로 압송되며 눈물의 트레일을 걸었다. 비슷한 무렵 한국에서는 수많은 동포가 일제 식민정부에 문전옥답을 빼앗기고 살길을 찾아 북간도를 향해 눈물 길을 걸었다.
미국은 세계최고의 인권 국가지만 그 뿌리는 깊지 않다. 인디언 박해 후엔 중국인들의 이민을 봉쇄했다. 여자들은 60년대 전까지 투표권이 없었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흑인들은 흑인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다. 아‧태계 이민자들이 오는 19일 오전 주정부 청사 앞에서 벌이는 연례 집회는 인권도 자유처럼 공짜로 얻지 않고 쟁취하는 것임을 일깨운다.
누구나 눈물의 트레일을 걷는다. 인생길이 항상 평탄하지는 않다. 고산 트레일을 평지처럼 걸었던 이 전회장(향년 66세)도 투병생활 6개월간은 눈물의 트레일을 걸었을 터이다. 영결식에서 목사님은 고난 뒤 안식이 있다며 이 전회장이 지금은 고통도, 슬픔도 없는 천국에서 안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엔 눈물의 트레일도 없을 터이므로 위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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