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보건소인‘ T.H.E. 클리닉’의 노력
당뇨병은 심장마비, 실명과 콩팥의 기능이 정지되는 심부전증 등의 치명적 합병증을 불러오는 무서운 질환이다.
사우스LA의 한 보건소 지하실. 길게 줄지어선 환자들이 머쓱한 표정으로 한명씩 체중계 위로 올라간다. 저울대 옆에서 간호사가 환자들의 개인 차트에 체중을 기록한다. 보름달처럼 동그란 얼굴을 가진 캐마라 재뉴어리(31)는 체중계 위에서 숨을 참는다. 하지만 저울 바늘은 야속하게도 200파운드를 지나쳐 245파운드를 가리킨다“. 어머, 좋지 않네.” 체중계에서 내려오는 재뉴어리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다음 차례인 트레이시 도널드(45)도 재뉴어리와 같은‘체급’이다. 240파운드를 기록한 트레이시는“저울이 잘못된 것 아니냐”며 딴소리를 한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넉넉한 트레이시의 몸집은 체중계가 아니라 그녀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가주민 10명 중 한 명이 환자… 10년새 32% 증가
대부분 빈민계층 무보험자들 많이 걸려 치료 어려움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데“식생활 개선”강조해봤자…
말끔하게 면도를 한 훌쩍한 키의 레이몬 마르케즈(62)는 계체량에 나선 권투선수처럼 모자와 구두를 벗고 시계까지 풀어놓은 뒤 저울대에 올라선다. 바늘은 170파운드를 가리킨다. 방안의 환자들은 “완전 알몸체중”이라는 농담으로 축하인사를 대신한다.
체중계 앞에 도열한 이들은 매월 T.H.E. 클리닉에서 몸무게 검사를 받는 당뇨병 환자들이다.
당뇨병은 심장마비, 실명과 콩팥의 기능이 정지되는 심부전증 등의 치명적 합병증을 불러오는 무서운 질환이다.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인 기세로 증가하는 당뇨병은 의료제도를 개혁하고 의료비를 줄이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노력에 딴죽을 거는 주된 장애물 가운데 하나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개인 납세자와 기업이 당뇨병과 관련해 매년 부담하는 액수만 240억달러에 달한다. 캘리포니아주의 주민 일곱 명 당 한 명이 당뇨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무려 32%가 늘어난 결과다.
커뮤니티 보건소인 T.H.E. 클리닉은 연방 정부가 당뇨병과 벌이는 전쟁의 최전방에 서있다. 이들에게는 당뇨병의 진군을 막으라는 연방 정부의 특명이 떨어졌다.
당뇨병 환자들이 공유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부분이 빈민계층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무보험자들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치료비는 납세자들의 주머니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
T.H.E. 클리닉과 같은 지역 보건소들은 당뇨병 확산 방지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환자들의 뿌리 깊은 식습관을 바꾸고 정기적인 운동을 병행토록 유도하는데 주력한다.
도시 빈민층에 속한 많은 환자들에게 당뇨와의 전쟁은 의지력의 싸움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생활습관과 혈당수준과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무지를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건강한 활동과 신선한 음식이라는 안전하고 편안한 대안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이들은 여유롭지 못하다.
전국 당뇨 교육 프로그램의 회장을 역임한 마사 펀넬의 지적대로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음식을 조절해 체중을 줄이고 운동을 하라고 아무리 얘기해 봐야 헛일이다.
올해 17세인 샤네이 윈부시(17)는 하루 다섯 번씩 자신의 몸에 인슐린 주사를 놓고 당뇨병환자임을 알리는 팔찌를 착용하고 다닌다. 갑작스런 혈당 변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경우를 가상한 대비책이다. 샤네이는 3대째 당뇨병을 대물림했다. 그녀의 엄마와 할머니 역시 당뇨병 환자다.
샤네이는 인슐린을 주입하지 않으면 피로감이 엄습하고 기력이 떨어진다고 호소한다. 혈당치가 솟구치면 심한 갈증과 함께 땀이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지난해 여름 정신을 잃고 쓰러진 후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T.H.E. 클리닉의 의사들은 샤네이에게 체중을 줄여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얘기하지만 그녀의 몸무게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간다. 그녀가 좋아하는 운동이라곤 온라인 테니스와 보울링 게임 뿐이다.
T.H.E. 클리닉은 당뇨병과의 싸움에 거의 ‘올인’한 상태다. 환자 대기실에 설치된 TV는 당뇨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혈당검사를 받고 발병 방지법에 관한 설명을 청취한다. 증세가 나타난 사람들에게는 영양사라든지 당뇨 교육그룹을 소개시켜 준다.
이제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원그룹과 교육 프로그램에 노출된 당뇨병 환자들은 고립된 환자들에 비해 혈당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뿐만 아니라 의사의 지시대로 거르지 않고 약을 복용하는 비율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T.H.E. 클리닉의 집중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당뇨병 환자들의 25% 이상은 이렇다 할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보건소의 조무사인 신시아 프란시스는 환자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격려와 경고를 번갈아 사용한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당뇨병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
T.H.E. 클리닉의 영양사인 가브리엘레 구즈만도 당뇨병 환자들을 상대로 음식을 가려먹지 않을 경우의 위험을 누누이 경고한다.
지난 여름 가브리엘레는 안젤리카 포르투나와 아직 사춘기에 도달하지 않은 그녀의 10대 딸과 마주 앉았다. 모녀는 모두 비만형이었다. 자신은 물론 그녀의 부모와 형제자매 모두가 당뇨병 환자라고 밝힌 포르투나는 어린 딸이 자신과 같은 부담을 떠안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가브리엘레는 딸마저 당뇨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가족 전체가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또한 포루투나의 딸에게는 소다를 멀리하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3개월 후 포르투나가 예약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된 가브리엘레는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포르투나의 딸은 성인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았다. 지금 당장 식생활을 바꾸지 못한다면 앞으로 그럴 기회는 없어진다.
전화를 받은 포르투나는 보험 커버리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서 치료를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레는 포르투나 모녀가 당뇨와의 전쟁에서 일찌감치 백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를로스 산체스(55)는 병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그는 15년간 당뇨병을 방치했다. 의사에게 찾아가는 것을 꺼려했고 처방약 복용도 소홀히 했다.
그러다 결국 사단이 났다. 지난해 2월 한쪽 발에 난 종기가 없어지지 않더니 급기야 기력이 떨어지고 구토가 뒤따랐다. 하버-메디칼센터 응급실을 찾아간 그는 당뇨병이 통제 불능의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관련 질병의 전염을 받기 위해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산체스는 수술을 받고 난 뒤 혈당 조절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여전히 당뇨병과 생활습관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한쪽 다리가 없는 상황이라 제한이 따른다.
운동량을 늘리려 휠체어 대신 목발을 사용하던 그가 최근 의족을 얻었다. 의족을 착용한 그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며 당뇨병을 떨치기라도 한 듯 환하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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