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1세대 베이비부머들이 겪는 건망증은 단순한 노화의 신호일 수 있으나 증상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보다 심각한 문제의 징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화의 대표적 신호 가운데 하나가 건망증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의 가닥을 잃어버리거나, 자동차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인지기능이 떨어진 탓이다.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도 찾지 못한 핸드폰을 우연히 냉장고 안에서 발견한다고 상상해 보라. 기막히다는 생각보다는 덜컥 겁부터 날 것이다. 고장 난 형광등처럼 깜빡대는 정신머리가 치매의 징후일 수 있다는‘자가진단’이 거의 자동적으로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물건 어디에 뒀는지 수시로 깜빡깜빡은 노화신호일뿐
TV드라마 이해 안되고 길을 잃는다면 정밀검사 필요
그러나 새로운 연구결과에 따르면 물건을 어디에 놓아두었는지 기억해 내지 못한다거나 머릿속이 일시적으로 정전된 듯 생각의 흐름이 날아가 버리는 현상은 비록 짜증스럽긴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양순한’ 노화 신호다.
반면 불과 수 분 전에 발생한 일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든지 낯익은 장소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따위는 단순한 노화 징후로 보아 넘기기 힘들다.
지난해 9월 미 노인병학회 저널에 게재된 보고서는 노인환자가 추가 검사를 필요로 할 만큼 인지기능에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
보고서를 작성한 하버드 메디칼 스쿨의 신경심리학자 레베카 아마리글리오는 “노인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는 이들의 기억력이나 사고능력에 변화가 있었는지 반드시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이런 문제들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 스스로 무시해 버리는 경향을 보인다. 인생의 후반전에서 언제가 마주치게 되는 ‘그렇고 그런’ 현상으로 넘기려들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레이더망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법에는 인지장애라 불리는 이런 유형의 문제들을 찾아내기 위한 의무적 검사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의사는 정기검진을 받으러 온 노인 환자들의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인지기능까지 살펴 추가 검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법이 나오기 이전부터 의학자들은 환자의 인지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아니면 알츠하이머나 다른 유형의 치매를 의심해 봐야 할 상태인지 판별해 낼 간단한 방법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해 왔다.
아마리글리오 박사도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평균 연령이 74세인 여성 1만7,000명을 상대로 전화 인터뷰를 실시, 기억력 쇠퇴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다.
아마글리오 박사 연구팀은 이렇게 확보한 자료와 표준 인지력 검사에서 각 참가자들이 올린 점수와의 상관관계를 살폈다.
조사 참가자들에게는 7개 항의 질문이 주어졌다. 여기에는 최근 기억력의 변화유무와 함께 장보기 리스트 등과 같은 간단한 목록을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든지 근래 일어난 이벤트가 제대로 생각나지 않거나 방금 들은 얘기를 떠올리는데 애를 먹는지 여부가 포함됐다.
연구원들은 또 구두나 서면 지시를 따르기 힘들거나 기억력 감퇴로 인해 집단 대화, 혹은 TV 프로그램 시청에 문제를 겪는 경우가 있었는지도 물어보았다.
마지막 질문은 익숙한 거리에서 “길을 잃은 경험이 있느냐”였다. 이 가운데 인지력 장애와 연결 지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요인은 낯익은 장소에서의 길 잃기로 나타났다.
여러 사람들 사이의 집단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고 지시를 따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 역시 인지기능 손상을 의심할 수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발언 내용을 기억해 가며 대화의 흐름을 쫒아가는 것은 정상수준의 인지기능을 필요로 한다.
노인들이 TV 드라마나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머릿속에서 정보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방금했던 생각을 갑자기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멍 때리는’ 경험은 대단히 불길한 치매의 전조증상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최소한 집단 대화나 TV 시청에 어려움을 겪는 것만큼이나 인지기능 장애를 가리키는 지표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법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순간 깜빡증은 인지기능 장애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다만 아마글리오 박사의 연구에 참가한 여성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순간적인 건망증을 자주 겪는 사람일수록 표준 인지력 검사에서 더 낮은 점수를 받는 경향을 보였다.
아마글리오 박사는 순간 건망증을 제외한 6개의 질문에 대해 참가자가 ‘그렇다’고 답할 때마다 인지장애 가능성이 20%씩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만든 1차 인지장애 판별기준은 일반화하기가 힘들다. 우선 연구 대상이 모두 백인 여성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특정 연령대의 백인 여성들에게서 뽑아낸 연구결과가 남성이나 타 인종집단에 그대로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샘플집단의 제한성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데에는 ‘과학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뉴욕시 소재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알츠하이머 연구센터의 소장이자 심리학 교수인 매리 사노는 ‘노인 건망증’ 연구 참여자들의 보고에 기초를 둔 보고서는 이들이 전화를 이용해 실시한 검사에서 얼마나 놓은 점수를 올렸는지를 보여줄 뿐 실제로 치매가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고 지적하고 대상군 가운데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가 섞여 있었는지 확인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가 과장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노 교수는 이어 아마글리오 박사가 연구과정에서 밝혀낸 문제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아마글리오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치매를 가려낼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개발하는 것이 다음 수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1차 목표는 정확도가 높은 진단 도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추가 인지기능 검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간단한 기준을 만드는데 있었다는 뜻이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 제시한 7개의 질문에 대한 환자들의 대답에 후속 검사가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단서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혹시 내가 치매 초기단계가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든다면 아마글리오 박사가 제시한 7개 문항 가운데 순간 깜빡증을 제외한 나머지 6개 문항에 대해 자문자답해 보라.
익숙한 장소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거나 TV 드라마 줄거리를 쫓아가는데 종종 어려움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가 인지기능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다.
하지만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자주 잊어버린다거나 방금 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다 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몸도 마음도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하다. 20년 이상 된 자동차는 평소에 아무리 정비를 잘해도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70년 이상 사용한 뇌의 인지기능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시로 심한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정상작동 불능상태에 빠지지 않았다면 전혀 낙심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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