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 영준 화백을 처음 만난 것은 3개월 전, 지인의 집으로 연말에 초대를 받았을 때였다. 오래 전부터 명성은 들었으나, 본래 외출을 잘 하지 않고 지내는 나는, 북가주에 오래 살았으면서도 유 화백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우리의 만남이 인연이 되어, 며칠 전에는 유 화백으로 부터 귀한 책 한권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그 책은 ‘Ordinary Saints’라는 제목이 달린 최근에 나온 그의 화집이다. 사람의 얼굴로 가득한 화집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가 그린 얼굴들은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인물화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가슴속에 감추어진 생각들이 포착되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얼굴에는, 사람들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괴로움과 환희, 그리고 연륜이 그 속에 각인된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하였던가 상상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여정이 새겨진 얼굴. 고난과 시련, 사랑과 미움, 아름다움과 슬픔, 그리고 오랜 인고 끝에 마침내 나타나는 표정. 그러한 얼굴을 지닌 사람은 아마도 어머니일 것이다. 대지의 에너지를 받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근원. 그러한 힘을 지닌 얼굴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어머니의 얼굴, 혹은 성자의 얼굴일 것이다.
그러한 그림은 패기만만한 젊음이 충만할 때에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격정과 오랜 시간의 수련을 거친 다음, 스스로 익어서 나무에 달려있는 풍성한 과일과도 같이 무르익어가는 시절에 완성되는 그림일 것이다. 그것은 선한 인간의 내면에 숨어있는 모든 감정들을 알아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에 나오는 그림일 것이다.
책머리에는 유 화백과 최 정화 교수와의 인터뷰가 나와있다. “세상에 그 많은 얼굴을 보세요. 다들 비슷하지만 그 속에서 베어 나오는 느낌은 무한히 넓고 또 높죠. 인간은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광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엔 무수한 파도들이 존재하죠.”라고 화가는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물이 바다에 도달한 다음, 마침내 잔잔해 지는 바다와도 같은 많은 얼굴의 표정들을 나는 바라보았다. 그러한 그림은 화가의 연륜이 담겨진, 세월에 깎이고 다듬어진 화필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이다.
어찌 그림 뿐이랴. 우리의 마음이 표현하는 예술의 힘.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되어있는 아름다움이며, ‘선한 마음’이다. 그래서 유 영준 화백은 인터뷰에서 말했나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해도 누구에겐가는 성자처럼 선한게 인간이지요. 어쩌면 그 얼굴이 우리의 ‘본래 진면목’ 그 얼굴이 아닌지요.”
모든 예술의 궁극목적은 인간의 내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삶의 흔적, 그 아름다움이 남긴 발자국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신은 우리에게 예술의 재능을 주었던가? 그러므로 유 화백이 그린 ‘Ordinary Saints, 평범한 성자들’은, 그가 표현한대로 ‘강한 생명력을 가진 영웅’이라고 말해도 된다.
그 특이한 화집에는 예술이 지닌 참모습이 들어있다. 모든 예술은 철학이며, 예술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같은 목적을 향해서 한 방향으로 가는 동반자이다. 삶이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위에 우리가 남기고 가는 흔적이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 신의 선물이며,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사명이다. 예술은 아름답고 영원하다.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 인간은 신이 만든 위대한 작품이며,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평범한 성자’의 모습으로 이 땅 위에 살아간다.
얼굴의 표정이 여러 모습으로 그려진 화집을 바라본다. 위대한 성자의 얼굴, 인고와 극복의 힘으로 마침내 승리하는 초월자의 얼굴.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평범한 나와 당신의 얼굴. 유 화백의 그림에 축배를 드린다. 우리들의 ‘본래 진면목’ 그 얼굴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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