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봄. 봄. 봄이 왔다고 앞, 뒷 마당의 꽃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작은 앉은뱅이 꽃들이 바위틈과 관목 주위에 피어나면서 겨우 내내 썰렁했던 정원이 한결 아름다워지고 있다. 더구나 한국말로 뜰냉이, 영어로는 알리썸(Alyssum)이라 부르는 납작하고 작은 꽃들이 마치 제 세상을 만난 듯 온통 하얗게 밝히고 있는데 모양새에 비해 그 꽃들의 향기는 유달리 강렬한 게 특징이다.
뜰냉이는 하나 하나의 꽃을 바라보면 화려하거나 아름답다는 느낌을 못 느끼지만 다른 꽃이나 바위 곁에 모여 피어있으면
그 꽃의 역할에 감탄을 한다.
이 작고 앙증맞은 하얀 꽃으로 하여금 다른 꽃들이나 바위 등 정원의 모양새가 살아나기 때문인데, 동백이나 장미처럼 결코 주연이 되지는 못하지만 화려한 조연의 꽃으로도 자족해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 아무래도 머리 좀 식히러 너한테 가 있어야겠어."
뜬금없이 서울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삼스레 물어보고
허락 받을 우리 사이도 아니건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친구는 결혼 후, 대부분의 아내들이 그러하듯 열심히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남편의 위스컨신 주립대 박사 과정 때도 최선을 다해 꿋꿋하게 내조를 하였고, 아들, 딸도 잘 자라주었다. 가수가 된 아들과, 좋은 직장에 나가는 딸… 그런데 문제는 이제 자신인 것이다. "조연 역할 하기도 이젠 힘들어… 나도 때론 주연이고 싶거든" 하면서 남편과 자식들 앞에서 해 온 평생의 조연 역할에 불쑥 불쑥 반기를 들고 싶다고 했다.
가끔 젊음의 방황을 하는 자식들 앞에서는 "아프니까 청춘인 거야" 하면서 김난도 교수의 말을 들이대며 이해심 많은 엄마 역할도 잘 하지만 "우리 중년도 아플 줄 알아” 하면서 나의 동의를 구한다.
우울해 하는 친구와 알리썸(Alyssum) 꽃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동이 없는 생각은 발전이 없는 것 아닌가" 하며 "그렇게 아프면 진정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의 끝까지 들어가서 홀로 서기하는 법을 찾으라"며 어줍쟎을 지도 모를 내 생각을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도 내 생(生)이 버거워서 흔들리고 뒤척일 때 <홀로 서기>를 위해 붙잡은 것이 문학이라며
나의 <뒤척이는 삶>이란 아래의 졸시 한 편을 위로 한답시고 읽어 주었는데... 진정으로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작은 호수에 비친 가을빛 나무와
산에서 굴러 떨어진 하얀 바위들과
그 사이에서 이미 생을 나직하게 이별한 잎들이
그저 바람에 흔들려 애처로울 때
그 호수에 비친 반영과 떠서 움직이는 시간들
어디서부터 그 움직임은 왔을까(중략)
비켜갈 데 없던 나의 생 한 가운데
바람처럼, 노을처럼 다가선 작은 움직임은
무풍지대 들판에
회오리 돌풍을 일으켜
침잠해 있던 저 편의 의식을 끌어 올린다
떨어지는 눈물에 가슴이 저리고
뒤척이며 밤새 돌아누워도
흐르는 음악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 뒤 돌아보지 않듯이
내
단단히 삶을 끌어안고 옷깃을 세운다
(시/엘리자벳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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