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여! 보수여!
나는 이미
그대들의 호화찬란한 행사들에 눈이 멀었고
나는 그대들의 거창한 함성소리에 귀가 멀었다
이제 나는
그대들이 서 있는 땅위에 피어나고 있는
한 송이 꽃향기에 취해보고 싶다
나는 지금,
초저녁 동쪽 하늘에서
내일을 채우며 떠오르는
탐욕스런 초승달이 아니라
새벽녘 서쪽 하늘에서
내일을 위해 자신을 스스로 불태우며
사위어가는 그믐달을 보고 싶다
나는 그대들이 부르짖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이상향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는 그대들의 현재 모습을 보고 싶다
그대들이 가정, 이웃, 교회, 사회 사이에
가꾸어 놓은 그대들의 정원을 보고싶을 뿐이다
나는 사랑에 굶주린 사람이다
내가 필요한 것은 장미빛 사랑의 계획서가 아니라
빛바랜 당신들의 옛 수표뭉치다.
나는 민족을 사랑한다는 그 속삭임에 지쳐있고
요란한 구호에 병들어 있는 사람이다
그대들의 심장에서 빵 한 쪽을 나에게 꺼내달라
그 뜨거운 빵 한 쪽이 나의 가슴을 채울 것이다.
나는 값비싼 그대들의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이해의 눈길과
촉촉이 젖어있는 연민의 눈동자일 뿐이다
탐욕으로 시작된 자유와 평등,
미움과 증오가 이룩한 통일은
또 하나의 지옥이라는 것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새날을 위해 사위어가는
저 섣달그믐달의 마음을 품어 볼지라!
박평일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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