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큰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첫 번째로 한 말이 “엄마, 대학에 들어오니까 한국말 하는 아이들하고 한국말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따로 따로 갈라져서 그룹이 만들어 졌어요”라는 말에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70년대 말 내가 미국에 왔을 때 한인들은 지금처럼 그렇게 열심히 자녀들에게 한국말 교육을 시킬 정신적인 여유보다는 한국어에 집중하면 혹시 영어에 지장이 생길까봐 학교 교육에만 치중했던 것 같다. 나 역시도 큰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영어가 많이 뒤처져 여름방학이 되어도 한국에 보내지 못하고 영어 과외공부만 시키다 보니 자연히 한국말은 뒷전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정보도 부족하고 경험도 없고 자신감도 부족해서 참으로 힘든 세월이었다. 그 후 막내 아들이 태어난 후에는 특별히 양쪽 나라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 유치원 입학 전에는 딸들에게 절대로 영어로 말을 못하게 하고 한국어 발음부터 정확하게 가르치고 읽기, 보고 쓰기, 받아쓰기까지 매일 연습시키고 한국어를 첫 번째 언어로써 유창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후 역으로 한국으로 유학을 보내 2년간 공부를 시켰다.
그 결과로 한국어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유교사상, 쉬운 한자들, 그리고 붓글씨까지 배워서 그것이 아이에게 큰 자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고 나니 아들과 나와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아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편안하게 이루어지는지 가슴 속의 체기가 뚫리듯 했다.
약 한 달 전쯤 볼일이 있어 거래하는 은행에 들러 무엇을 좀 물어보려고 하니 한인인 듯한 청년이 나를 보고 “한국인이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묻는 것이었다. 말하는 태도라든가 억양 등이 마치 열세 살에 미국에 온 내 조카 녀석하고 하도 비슷해서 “몇 살에 미국에 왔어요?” 물으니 “여기서 태어났어요”라고 답한다. “그럼 집에 할머니가 계셨나요?” “아니요.” “그럼 한국에는 자주 갔었나요.” “아니요” 하는 게 아닌가.
“그럼 누가 그렇게 한국말을 완벽하게 가르쳤어요?”라고 물으니 “어머니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 역시 내 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었는지 모른다. 그 어머니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여기 미국에 살고 있는 어머니들이여, 우리의 자식들을 한국에 꼭 보내지 않아도 영어도 잘하고 한국말도 잘하는 아이들로 길러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지를 갖고 용기를 내어 훌륭한 한국인의 아들딸로 길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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