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전 산드라네 옆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 그녀의 첫 인상은 말할 수없이 험악했다. 양은쟁반에 자갈 구르는 듯한 목소리, 늘상 얼굴을 찌푸려 밭고랑처럼 굵게 패인 주름살, 마음에 안드는 일을 보면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욕설. B워드, D워드, F워드.. 상황에 따라 강약조절도 절묘했다. “아이쿠, 이사를 잘 못 왔나보다.”
그러나 웬지 마음문을 닫은 듯한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었고, “음식 끝에 정 난다”는 말을 생각하며 한동안 음식공세를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산드라의 기호품은 줄담배와 커피. 뭘 잘 해먹지도 않는 그녀를 위해 갖가지 한식을 정성껏 선보였다. 그후에도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조금 여유있게 만들어 나눠먹었다.
먹고 나면 언제나 빈 그릇이 아닌, 직접 가꾼 유기농 과일을 담아주는 산드라. 가족 없이 개 네마리, 고양이 두마리와 같이 사는 그녀는 정원 가꾸기가 취미이고, 역시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 집 식구들과 금새 좋은 친구가 되었다. 60~70년대 히피문화의 메카였던 UC버클리에서 반전운동, 환경운동, 여권신장을 외치다 부조리한 세상을 등지고 한때는 마리화나에 빠져, 텔레그라프를 방구들 삼아 뒹굴던, 때론 퇴폐적이었지만 나름 의식있던 맹렬 여성. 산드라가 지닌 젊은 날의 이력이다.
로스쿨을 마치고 법대 교수로, 변호사로 살던 그녀는 60세 이후 지인의 법률사무소에서 일을 도우며 소박하게 노후를 준비중이다. 혼자 살면서도 늘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부지런함, 절대 버리지 않는 검소함, 지역사회를 위해 틈틈이 봉사하는, 참으로 배울 점 많은 65세의 아줌마다. 사람사는 얘기를 글로 엮기 좋아하는 나는 그녀의 라이프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도 영화같은 얘기가 숨어 있었다.
20대에 혼자 배낭여행을 떠났던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그와는 두 번의 만남이 전부, 그후 혼자 아이를 기르며 살았다. 공부하랴, 돈벌랴, 아들 키우랴, 남자 만날 틈도 없었다고. 미국판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가 한번 찾아보라고 했더니, 옛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랬던 산드라가 요즘은 자주 웃는다. 무비스타가 꿈이던 그녀의 아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엄마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고향역에서 님을 기다리는 이뿐이, 꽃뿐이 마냥 산드라 얼굴에 화색이 돈다. 20년만에 같이 살게 된 유일한 피붙이니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그동안 왠지 스산했던 산드라의 가을이 올해는 봄햇살 처럼 포근하고, 보름달마냥 풍성해보인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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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영씨는 월간정보시대, LAN타임즈/PC위크 한국판 수석기자를 거쳐 <월간 인터넷> 편집장을 역임했다. ‘97년 미국으로 건너와 IT매체의 실리콘밸리 특파원과 동아일보 실리콘밸리 통신원을 지냈고, 미주 주간현대 취재팀장을 지낸 바 있다. 현재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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