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일룡 변호사를 몇 년 전에 알게 되었다. 일을 같이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반대편의 변호사로서 싸우기도 했다.
문 변호사는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명문 대학을 졸업한 후 존경받는 변호사로 오랫동안 일하고 계신다. 몇 년 전, 소송 중에 왜 훼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 자리에 출마하시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때 변호사님께서는 한인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싶어서라고 대답하신 기억이 난다. 다른 한인들이 성취 못한 것을 성취함으로 한국인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 하셨다.
내가 20대였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40대에 접어들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미국인 친구들은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1990년대 2000년대를 지나고 이제 2012년을 바라 보고 있는 날, 한국은 글로벌 국가가 되었다. 한국 국민의 근면성과 독창성은 한국인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런 과정에 개인적으로 한국을 빛낸 사람들이 있다. 즉, 골프 무대를 보면 박 세리와 최경주 선수들이 세계의 장벽을 깨기 전에는 한국인이 세계의 골프 무대에서 성공하리라고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길을 따라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성공하는 골프 선수들은 이제 미국 무대, 국제 무대에도 많다.
문일룡 변호사는 한국인으로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고 계신다. 수퍼바이저 자리에 출마하셨을 때, 나는 문 변호사의 지역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를 할 수 없어서 무력함을 느꼈다. 2009년에 0.7퍼센트 차이로 지셨을 때 내가 어떻게 더 도울 일이 없었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었다. 문 변호사는 이제 다시 교육위원회 자리에 출마하신다. 많은 한인들이 훼어팩스에 살기 때문에 투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자식이 셋이 있는 부모로, 내 아이들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많은 분들이 학군이 좋기 때문에 훼어팩스 카운티에서 산다. 문 변호사의 서비스와 헌신이 이것을 크게 도왔다는 것에는 의심이 없다.
문 변호사는 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장벽을 깰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고 계신다. 문 변호사와 같은 분들의 헌신과 길이 기반이 되어서 삼사십년 후에는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정치인, 판사, 정책 입안자들로서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임지현
변호사 /폴스처치,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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