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0 에이커 태우며 주택지 초토화
▶ 미국 도시지역 화재로는 사상 최대, 72시간 동안 활활, 사망자 25명 포함 175명 사상, 주택 3,354채 전소시켜
베이지역 사상 최대의 화재로 175명의 사상자(사망자 25명)를 내고 3,354채의 주택을 태운 오클랜드 힐스 대화재(Oakland Firestorm)가 발생한지 오늘로 20주년을 맞는다.
1991년 10월 19일 저녁 버클리시 남쪽지역, 오클랜드의 24 고속도로 ‘칼디콧 터널’ 북쪽 산간지역의 작은 산불로 시작된 불이 미국 도시지역 화재로는 최대의 면적(1,520 에이커)을 불태운 것은 당시 5년간 계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잡풀과 나무들이 바짝 말라 있던 데다 20일 새벽부터 바람이 시속 65마일로 부는 바람에 소방대원들이 19일 완전히 진압된 것으로 생각했던 불이 다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집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온 한 주민은 최근 인터뷰에서 “불길이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번지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나무가 주변이 하도 뜨거워서 그냥 터지는, 아주 무서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본보 1면 보도(1991년 10월 22일)를 보면 “화재사건은 20일 상오 고급주택 지역인 오클랜드 브로드웨이 테라스 북쪽의 바짝 마른 잡초에서 (다시) 발화,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록 번져갔는데 이 지역 주민들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번지는 불길을 피해 가산을 정리할 여유도 없이 산밑 안전지대로 긴급대피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UC버클리 한인 교수를 포함, 당시 집을 잃은 한인도 여러 명이 있었다.
당시 화재가 발생한 곳은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 있으나 아직도 빈자리가 곳곳에 남아 있으며 이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화재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한편 당시의 유례없는 화재는 미 서부지역의 화재진압 방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불을 진압하기 위해 멀리 오리건과 네바다주에서 온 소방대원들의 서로 다른 용어 사용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문제로 지적, 그 후 소방당국은 용어와 주파수의 ‘표준화’했으며 이스트베이 지역 소방국들에서는 산불이 진압된 다음 소방서로 귀환하지 않고 산불이 났던 곳에서 아예 소방차를 세워놓고 밤새 자리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서반석 기자> seobs@koreatimes.com
당시 화재 사건을 보도한 본보 1991년 10월 22일자 신문<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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