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산도 변하는 시간 아직도 그날의 악몽이...
강성순(오른쪽)씨와 강필순씨가 퀸즈 서니사이드 자택에서 아들 준구씨의 10년 전 사진과 테러 당시 신문을 들여다보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오늘이라도 당장 돌아올 것만 같은데… 지금도 맨하탄 하늘만 바라보면 가눌 길 없는 슬픔에 억장이 무너질 뿐입니다.”
9.11테러 당시 월드트레이드센터(WTC) 빌딩에서 일하다 실종된 고 강준구(당시 34세)씨의 아버지 강성순(73·퀸즈 서니사이드)씨 부부는 요즘도 전화벨만 울리면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한 외아들 준구가 ‘점심 식사 사드리겠다’며 걸어온 전화일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 난리가 터지기 하루 전에도 아들은 “요리 잘하는 근사한 식당이 있다”며 “내일 어머니 모시고 함께 정오까지 회사 근처로 나오라’는 점심약속 전화를 해왔었다. 그게 생전의 아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WTC 104층에 위치한 캔트 피츠제널드 증권회사에서 증권분석가로 근무하던 아들은 9.11 아침 출근 이후 소식이 끊겼고, 이후 가족들은 사고지 주변을 비롯한 맨하탄 시내를 백방으로 헤집고 다녔지만 시신은 물론 유품조차 찾을 수 없었다. “테러 발생 전날 발표된 27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에 준구가 포함됐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텐데…”라며 끝내 눈시울을 붉힌 강씨는 “10년이 다 지나도록 녀석의 아무런 유골이나 유품도 확인하지 못한 채 아들의 죽음을 인정한해야 한다는 현실이 사람을 참으로 힘들게 한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강씨 부부는 평소 불우 아동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아들의 뜻을 기리고자 지난해 도미니카공화국 수도 산토도밍고에 아들의 이름을 딴 ‘준구 메모리얼 스쿨’을 개교했다. 강씨부부가 6만달러의 종잣돈을 대고 순복음뉴욕교회 교인들의 헌금으로 문을 연 이 학교에는 현재 15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준구 씨의 어머니 강필순 씨는 “마약과 범죄 소굴이었던 인근 지역이 학교가 운영되면서부터 크게 정화돼가고 있다. 준구가 죽어서도 어린 영혼들을 위해 함께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며 지갑 속에 넣어두었던 아들의 사진을 보며 울먹였다.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미국의 심장부인 맨하탄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서 아들, 딸, 동생 혹은 남편을 잃은 가족들은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아직도 복받쳐 오르는 슬픔과 분노가 흙탕물이 가라앉듯 침잠해 있을 뿐 메울 수 없는 생채기만 가득할 뿐이다. 테러 현장의 참혹했던 모습은 ‘그라운드 제로’로 어느새 또 다른 기념물이 돼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유족들은 10년전 악몽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그날의 아픔을 힘겹게 삭여가고 있다.
9.11 테러사태로 목숨을 잃은 한인 희생자는 모두 21명. 준구씨 외에도 김재훈(앤드류), 아놀드 임. 대니얼 송, 데이빗 이, 구본석, 이동철, 이현준, 박계형, 이명우, 리차드 이, 로렌스 돈 김, 송 댄, 육 크리스티나, 조경희, 박진선, 박계형, 추지연씨 등 대부분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인재들이었지만 어떤 유족들도 현장에서 뼈 한 조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상당수의 유족은 한동안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생업을 놓는 등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이제 뉴욕일원에 살고 있는 유족은 3~4가족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한국이나 캐나다, 샌디에이고, 시애틀 등 타주로 떠나버리는 등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테러로 둘째 아들 재훈씨(당시 26세, WTC93층 ‘프레드 앨저 매니지먼트’사 근무)를 저 세상에 먼저 보낸 김평겸 9.11한인유족회 회장은 “9.11테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여전히 아물지 않는 큰 상처로 남아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더욱 밀려오는 아픔에 외부와 단절하다시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WTC 99층 소재 마쉬&매클래넌사에 근무 중이던 딸 조경희씨(당시 30세)를 잃은 어머니 조유리(뉴저지 거주)씨 역시 “대부분 유족들이 아직도 가족을 잃은 충격에 빠져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딸 생각을 지워내기 위해 나무를 심어 키우고 있지만 큰 보탬이 안된다”며 아픔을 전했다.
유가족들은 그러나 이같은 절망속에서도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희망찾기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김평겸 회장은 오래 전부터 아들의 영어이름을 딴 ‘앤드류 김 장학 재단’을 만들어 한인사회 테니스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오며 아들을 추모하고 있다. 또 육 크리스티나씨의 가족들은 딸이 다니던 학교에 장학금 10만달러를 쾌척했으며 추지연씨 가족 역시 한미장학재단에 10만 달러를 기증하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있다.<서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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