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이미 고인이 된 서강대 영문학과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번” 수필집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1984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당시 미국의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작가가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잠시 한국을 방문했었다. 윈도 샤핑이나 하자는 여동생에게 끌려서 한 쪽 다리를 저는 장 교수는 낡은 청바지와 허름한 티셔츠를 걸치고 목발을 짚고 의류점들이 집산해 있는 명동에 갔다.
동생이 갑자기 어떤 진열장에 걸려있는 흰색 원피스가 마음에 든다고 하며 입어 보겠다고 가게에 들어갔다.
그 가게 문턱이 너무 높아서 몸이 부자유스런 장 교수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동생을 탈의장으로 안내한 후에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던 주인 여자가 그녀를 보고는 흠칫 놀란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와서 대끔 “나중에 와요. 손님이 있는 거 안 보여?” 하고 내뱉듯 말했다. 장 교수는 영문을 몰라서 눈만 멀뚱거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목소리를 한 옥타브 더 높여서 “나중에 오라는 말이 안 들려? 지금은 동전이 없다구요!” 하며 아침부터 재수 없다는 듯 불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몇 달 전 토요일 오후에 워싱턴 디시에 있는 세계 유일의 청각장애인을 위한 갤러뎃(Gallaudet) 대학 야구 경기장에서 경기를 구경했다.
장명희 교장 수녀님이 인솔한 충주 성심 가톨릭 청각장애 특수학교 팀과 갤러뎃 대학팀 사이에 펼쳐진 경기였다.
야구 경기에 문외한인 내가 무더운 주말 오후에 20마일 이상을 운전해서 생전 처음으로 야구 경기를 직접 관전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록 입장료가 무료이기는 했지만 경기 며칠 전에 후배 R로부터 한국에서 몇 년 전에 관객 330만 이상 동원에 성공했다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글러브’ 씨디를 선물받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저녁식사 후에 심심풀이로 시작을 했었는데 저녁내내 흐느끼는 감동으로 보았다.
영화 내용은 왕년 MVP였지만 폭력에 연루되어 프로 야구계에서 축출되어 백수가 된 김상남 투수가 성심 청각장애인 특수학교 야구팀 감독을 맡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청각은 야구경기에서 생명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청각을 상실한 장애인들로 구성된 야구팀을 훈련시켜 고교야구 봉황기 토너먼트에 출전시켜 1승을 거둔다는 목표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격이 괴팍하고 사고뭉치인 김 감독은 절망을 하며 여러 차례 감독직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구 정철수의 피눈물 나는 우정, 청각장애 담당 나원주 교사의 격려에 힘입어 부정적인 선수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고 후천적 청각장애로 절망 속을 헤매고 있던 차명재 투수를 선발해서 봉황기 출전의 기적을 일궈내게 된다.
그는 선수들에게 “듣지 못해도 소리질러! 사람들이 욕하더라도 소리 질러! 넌 너야!” 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가를 그들 가슴에 호소한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기 이전에 가슴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물론 경기는 영화에서 청주장애인학교 야구팀이 고교야구 명문 군산상고팀에게 32-0으로 패하듯이 미국 갤러뎃 대학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날 내가 경기를 관람하며 흘렸던 눈물은 장영희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흘렸던 눈물과는 달랐다. 휴머니즘이 흘리는 인간승리의 눈물이었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It is silly not to hope. It is a sin” 하고 독백하며 흘렸던 바로 그 벅찬 감동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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