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예쁜 이름을 가진 꽃, 민들레에게도 소원이 있을까...
한 달 전쯤, 민들레 한 포기가 집 앞 보도 콘크리트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것을 잡아 뽑으려다가, 하도 뿌리가 깊기에 그냥
윗대궁만 잘라버렸던 일이 있었다. 오늘 그 자리에 무엇인가
무릎 높이만큼 부쩍 자라 있어 보니 바로 그 민들레였다.
온몸에 독기를 품은 채 잔가시들로 무장하고 이전보다 더 굵고
억세어져 있는 것이었다.
짓밟히고 짓이겨도 살아나는 강인함과 한결같음 때문에 민들레
에게는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면 거기에 민들레의 비밀스런 점들이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진 이름과 모양만으로 미처 다 말하여지지 못해 서글픈
민들레의 안간힘과 몸부림이 보인다.
민들레가 야생에서 사람 키 높이까지 자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민들레를 또 다른 <앉은뱅이꽃>이라는 불구의 이름으로
부르게 된 데에는, 꽃에서부터 홀씨까지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의 흔적이 배어있음에 가슴 한 켠이 아리운다.
고름을 잘 나오게 하고 위장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으며 천식,
만성 간염, 부종 등 만병에 두루 쓰임새가 뛰어난 약초라 하여
한국에서는 물을 많이 주어 별도로 재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 북가주만 하여도 민들레는 잡초라 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바로 원하지 않는 곳에서 모질고도 끈질기게
자라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장미라도 필요치 않은 곳에
자라면 한낱 잡목에 불과해지는 것처럼.
꽃이 꽃인줄 알고 피어나는 자리가 중요하다. 비록 본의 아니게
잡초로 전락되고 말았지만, 민들레가 택한 그 만의 생존전략은
잘리기 전에 최대한 키를 낮추고 될 수 있는 한 빨리 꽃을 피워
홀씨를 만든 다음 바람이 세게 불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 작은 씨 하나가 깃털을 달고 백 리까지 멀리멀리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찌 아는 것인지...그렇게 한 뼘이 채 되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보고 <앉은뱅이꽃>이라 부른 이면에는
이러한 민들레로서의 치열한 번식 본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민.들.레. 라고 조그맣게 소리 내어 불러본다. 민들레만큼이나
예쁜 이름을 가진 꽃들이 더 많이 있겠지만, 엉겅퀴나 오랑캐
꽃은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무섭고 사나운 인상을 나타낸다.
꽃은 꽃이로되 피를 잘 멈추게 하고 엉기게 하며 붓기를 낫게
하는 가시(귀)나물이라 그 효능을 가지고 엉겅퀴라 부르며,
또한 오랑캐꽃은 생김새가 마치 옛날 오랑캐의 머리테 모양을
닮았다고 그렇게 불리우기도 한다. 오랑캐꽃은 이미 제비꽃
이라는 날렵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꽃임에도 볼썽스레 곱지
못한 별명 하나로 인해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법 하지만,
오히려 들판을 가로 지르는 바람 속에 자유로워 보인다.
거기에 비하면 민들레는 들판 어디 뿐 아니라 문(門) 둘레에도
가리지 않고 잘 피어난다고 해서 민들레라는 아주 예쁜 이름을
지니지 않았을까... 서양에서는 마치 사자의 이빨을 닮았다고
Dandelion(tooth of lion)이라고 부르지만, 이 여름철에 많은
꽃들 중에서도 나는 노란 민들레 꽃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민들레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약초가 되었을텐데 같은 꽃
이라도 그 피어난 자리에 따라 잘리우고 뽑히우는 것이 못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예쁜 꽃 이름 만큼이나 그 효능이 탁월한 민들레에게 소원을
묻는다면, 민들레는 무어라 말할지 궁금하다.
세상에서 살 맛나는 일은 누군가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고 인정
해주는 일이다. 민들레에게도 그 자신을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누군가의 꽃밭에 마음껏 피어나고 싶고, 그 효능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치유받는 일이 생긴다면, 바로 그것이 민들레의
소원이 되지 않을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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