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군 뉴욕 - 필라 오가며 싸워
▶ 중부뉴저지에 역사 유적지 산재
1776년 7월 4일 그러니까 지금부터 235년 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미국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7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존 아담스 (John Adams),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존 제이(John Jay),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을 포함해 총 57인이 서명을 한 독립 선언문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서로 손꼽힌다.
그런데 왜 미국이 영국에 대항해 독립 선언을 했으며 독립전쟁을 불사 했을까? 500년 전 전 세계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알력다툼이 유럽 대륙 제국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이들의 영토 확보 싸움은 유럽뿐 아니라 미 대륙,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벌어졌는데 약 200년에 걸친 싸움에서 영국이 최후 승자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나 영국도 이 세계 대전에서 이익만 챙긴 것은 아니다. 과도한 전쟁 자금 지출로 재정 적자에 직면한 영국입장에서 식민지를 쥐어짜서 적자를 메꾸려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식민지이자 가장 믿었던 미국이 반기를 든 것이 문제였다.
‘인지세’로 불리는 Stamp Act가 1766년 공표되자 당시 가장 큰 무역항이었던 뉴욕에서 세금 반대 저항 운동이 대규모 열리기 시작했다. 일반 미국인들 조차 미국의 독립운동의 발생지는 보스턴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뉴욕에서 최초의 저항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특히 민병대 조직이었던 Sons of Liberty가 (영국군에게 훈련받고 영국의 무기를 사용해서 치안을 지키던 일종의 자체 방범 조직) 들고 일어나 반란을 주도했던 것이 미국 독립 운동의 효시이다.
이틀에 걸친 New York의 Sons of Liberty 반란은 영국군에 의해 주동자는 참수를 당하게 되고 뉴욕의 독립운동은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기세등등해진 영국은 설탕 등 생필품에도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770년 보스턴에서 열린 세금 반대운동에 참석한 이들을 몰살시킨 Boston Massacre가 일어났다. 1773년에는 당시 최고의 기호식품이었던 홍차에 세금을 매기기 시작하자 보스턴의 일부 상인과 식자층이 내이티브 어메리칸을 가장해 영국의 배에 올라 홍차꾸러미를 바다에 던져버린 소위 보스턴 티 파티 (Boston Tea Party)가 벌어진다. 그리고 참고 참았던 미국인들의 울분에 불을 지핀 것은 역시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1776년 독립선언이었던 것이다. 그 후 10년 동안 영국과 전쟁을 통해 미국은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이 전쟁 중 독립군이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싸웠는데 이 때문에 중부 뉴저지 많은 지역이 역사 유적지이다. 지금도 중부 뉴저지 린든 (Linden) 시를 가면 독립 전쟁 사적지 공원이 존재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