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세상살이가 고달프다.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박한 이상과 꿈은 무참하게 짓밟히는 세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위와 거짓이 판을 친다. 서로간의 인정은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이 같은 세태 속에서 문득 아침밥상에 올리기 위해 꺼낸 동치미를 보면서 여러 생각에 잠겨 본다.
동(冬)치미 라는 말은 ‘동침(겨울에 담그는 김치)’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 과정에 ‘침’자가 ‘치미’로 변화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려 이전 시기부터 만들어 먹었는데 추운 한겨울에 뜨거운 온돌방에 서걱서걱 얼음이 뜬 동치미를 맛보아야 제 맛이라 한다. 동치미는 한국 요리에서 물김치의 일종으로 무우, 배, 파, 삭힌 고추, 생강, 배와 국물로 구성된다.
내 어릴 적 어느 해인가 우리 집에 셋방 사는 총각이 있었다. 그때는 연탄을 때던 때라 연탄가스를 맡고 세상을 떠난 사람도 꽤 있었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몸이 망가진 사람들도 꽤 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새벽녘인가 갑자기 마룻바닥에 무언가가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총각이 연탄가스를 맡고 문을 간신히 밀고 나오는 소리였다. 너무나 놀란 나의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가스 중독이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얼른 마당의 땅속에 묻어있는 항아리에서 동치미를 떠다가 총각에게 마시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총각은 동치미를 마시고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나는 오늘날까지 동치미를 즐겨 먹는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가끔 가슴이 답답하고, 일이 안 풀릴 때 그 옛날 땅속에 있던 맛은 아니지만 냉장고에서 꺼내 한 사발을 쭈욱 들이키면 내 가슴은 뻥 뚫어지고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동치미를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의 재료로 어우러진 동치미는 배합이 잘 이루어져야 제 맛이 난다.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적당치 못하면 제 맛이 안 난다.
국물이 제법 색깔이 들어 군침이 돌게 하는 동치미병 뚜껑을 열고서야 잘못된 것을 알았다. 얇게 저민 배가 약간 상했는지 색깔이 약간 까맣게 되었고, 국물도 같이 진한 색이 되어 있었다.
작은 배 한 쪽이 전체의 동치미의 맛과 국물을 변하게 했던 것이다. 만들 때 조금 이상했던 배가 문제였다. 조그마한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온 동치미를 흐려놨으니 역시 다른 어우러진 무우는 물론이고 국물맛도 변해 있었다. 속이 상해서 아침부터 동치미를 보면서 세상살이도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보았다.
어느 단체에나 사회에도 어느 한 사람으로 인해서 전체의 분위기가 흐려지고 온통 다른 사람들도 흙탕물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려놓는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도 모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라는 말로 좋은 친구를 가려 사귀라는 것이다. 근주자적(近朱者赤)은 ‘붉은 것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붉어진다’라는 말로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흙탕물을 뿜어내는 사람이 있다. 더군다나 이민이란 항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고 삶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동치미를 보면서 작은 배 한쪽이 동치미의 본래의 맛과 향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물론 먹을 수 없게 되어 얼마나 속이 상한 지, 다음부터는 동치미를 담글 때 작은 재료 하나라도 중요하게 재료를 잘 선택해서 담가야겠다.
우리 삶도 잘 익은 동치미처럼 좋은 냄새가 나는 삶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민정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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