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전동차가 생기기 전에는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달리는 통근열차가 있었다. 통근열차는 서울을 매일 오가면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학교에 통학하는 학생들을 태우고 다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연기를 뿜으면서 달리는 열차의 의자에서 바라보는 차창 밖의 풍경은 언제나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 열차를 이용하는 남학생들 사이에는 주먹을 쓰는 왕초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평택까지 주름을 잡던 왕초가 내린 다음에는 천안출신의 왕초가 열차의 기세를 잡는다고 하였다.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는 토끼가 왕노릇을 한다니 당연한 일이었다.
평택에서 서울로 통학을 하던 그 왕초는 나에게 8촌 오빠가 되는 친척이었다. 대부분이 미남이고 얌전하였던 임씨 가문의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이 왕초오빠는 날까롭게 생긴 코와 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간 눈으로 지긋이 노려보기만 해도, 상대방의 기를 단번에 꺾고 주위의 분위기를 장악한다고 하였다.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어른들에게 깎듯하고 예의바른 태도 때문에 어른들은 그냥 모른체 눈을 감아주는 것 같기도 하였다.
교복에 가방을 든 학생이지만, 이 왕초들이 ‘야, 뭘 째려봐? 보는데도 각도가 있어!’ 라고 위협적인 말투로 시작하는 트집에 걸려드는 학생에게는 그야말로 오금이 저리는 존재들이었다. 특히 타지역에서 오는 낯선 남학생들이 그들의 그물에 걸려들게 되면 정말로 재수가 없는 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애용하던 말, ‘바라보는 시선에는 각도가 있다’에는 진리가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평소에 다른 사람을 보는 눈에는 정말로 각도가 있기 때문이다. 눈길에는 사람의 감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눈길과 미움의 눈길도 있고, 또 삐딱하게 바라보는 눈길도 있게 마련이다.
눈의 구조를 이용하고 개발해서 만든 카메라를 비스듬하게 들고 사진을 찍으면 모든 피사체가 비스듬한 각도로 사진이 찍혀진다. 반대로 옆으로 약간 누워있는 물체를 바로 선 상태로 보이도록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그것은 사진기를 어떻게 들고 찍었는가에 따라서 피사체의 바로서기와 기울어진 모양이 사진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에도 각도가 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비스듬하게 보인다. 또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볼 때에도 나의 시선을 그 사람에게 조준을 하고 바라보면, 그의 이상한 행동도 나의 시선에는 별로 이상하지 않게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정상적인 일을 삐딱한 각도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이다. 아무리 바로 선 것이라도 각도가 기울어지게 바라보면, 눈에 비친 인물들 사이에서 갈등과 오해와 미움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눈치 9단’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미리 짐작하는 그 ‘눈치’라는 것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결정되는 수가 많이 있다. 그래서 더러는 실수도 하게 된다. 시선에는 감정이 있고, 대체로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이 ‘눈치’ 또한 빠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때때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였다. ‘너는 참 눈치가 없어’. 눈치가 없는 사람은 감정이 둔하기 때문인지, 사물을 바라보고 대처하는 방식이 우둔한 것인지, 아니면 시선에 각도가 없기 때문인지,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나는 ‘눈치’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바라보는 시선에는 각도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삐딱한 피사체의 사진을 보고 그 예술성에 매료되어 감탄하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기울어지게 찍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본래의 반듯한 모습, 그 진정한 모양을 우리가 이미 안다. 비스듬하게 찍혀진 작품사진을 바라본다. 오해도 섭섭한 감정도 없이, 아름다움 만 가득히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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