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미국에 오래 살았나 봐” 남편이 한마디 툭 던진다. 내 뒤를 따라오던 노인 부부에게 문을 잡아 주느라 뒤늦게 쇼핑센터 주차장에 도착한 내게 한 말이다. 칭찬이라기엔 조금 비딱한 말투가 마음에 걸려, 안전벨트를 하며 내가 물었다. “문 잡아 주는 친절을 두고 하는 말이야?” 이번엔 말대신 피식 웃는다. 확실히 긍정적인 반응은 아니다. 도대체 뭘 두고 하는 말이었을까?
내용은 이랬다. 쇼핑센터 문을 잡아 주던 내가 정말 나이 많아 보이는 노부부를 손가락 하나 까닥해 부르더란다. 내용이야 ‘내가 어르신들 나오실 때까지 문을 잡아 드리겠다’는 친절의 표현이었지만, 남편은 노인에게 손가락 하나로 표현하는 내가 어색했었나 보다. 하긴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이 손가락 하나로 오라가라 했을 땐 자존심이 상해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시작된 손가락질이 운전면허를 따러 간 DMV에서도 쇼핑센터 계산대 앞에서도 이어졌을때에야 그건 단순한 손가락 표현일 뿐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저 ‘손가락질’일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주변에서는 다섯 손가락중 잘못 들면 엄청난 화를 불러 일으키는 그 손가락만 조심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러고도 한참 동안 손가락으로 하는 표현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주저없이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니, 정말 내가 미국에 오래 살긴 살았나 보다.
손가락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만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새끼손가락으로는 굳은 맹세도 하고, 손가락 몇 개로는 사랑한다는 의미도 전달할 수 있고, 어릴적 엄마가 약지 손가락으로 저어 주셨던 약효가 최고였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차가 멈춘다. 그런데 집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 앞이다. 갑자기 하게 된 쇼핑 때문에 저녁 준비가 많이 늦겠다 싶어, 밖에서 먹고 들어갔으면 했는데, 그걸 남편이 알아차린 거다. 그래! 이럴 땐 엄지손가락 번쩍 들어 Thumbs- up! 이것만큼 적당한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유학생 남편과 미네소타에서 미국생활을 시작한지 12년된 박명혜씨는 주립대학 교수가 된 남편과 새크라멘토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KBS, 평화방송, EBS 교육방송, CBS 기독교 방송등에서 방송작가로 활약했었다. 가끔 자유기고로 글쓰기를 하기도 하고 문학작품 공모에서 수상경력도 갖고 있다. 글쓰기 만큼 좋아하는 가드닝 때문에 2년전 원예학(Horticulture) 공부를 시작해 현재는 학교 식물원에서 일하고 있다. 박씨는 매일 살며 느끼는 사소한 이야기들부터 부부의 공동취미인 여행으로 미국과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얻은 다양한 이야기까지 앞으로 여성의 창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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