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년 새해를 희망으로 연지 어느새 한 달이 넘어가면서 새해의 새로움과 다짐은 어느새 일상 속에 묻히고, 반복되는 삶 속에 아무런 감응 없이 살아가기 쉬운 때. 희로애락으로 펼쳐지는 인간의 생로병사의 여정이 소리와 춤으로 승화되어, 멋과 흥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날처럼 깨운다.
지난 2월 2일 샌프란시스코 한인 문화원에서 주최한 설날 잔치에서 스물아홉 명의 한양대학교 국악과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보여주었던 “한국의 소리.” 정악과 민속악 그리고 신곡이 두루 연주되어 한국 음악의 진수를 고루 맛 볼 수 있었던 귀한 자리로, 한 시간 반 동안에 연주되는 음악 속에 우리의 삶을 비춰보는 가운데 어느새 삶의 지루함은 사라지고 매 순간 새롭게 숨 쉬고 있는 호흡으로 돌아와 참 새해를 맞게 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교포들에게는 더없는 설날의 큰 선물이 되지 않았는지.
“수제천”의 느리면서도 힘찬 박자, 단순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절도에 맞는 가락에 고요하게 집중하노라면 오랜 세월 속에서 우주와 호흡하면서 이루어 온 역사가 내 안에 흐르고 있음을, 음악을 이끌어가던 힘찬 피리소리가 멈추면서 그 가락을 해금과 대금 가락이 이어 받아 나갈 때 음악적 섬세함이 절정에 다 달아 내 호흡은 어느새 우주와 자연과 닮아 있음을 됨을 느끼게 된다. 어느 누가 이런 禪定의 마음을 이렇게 음악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가야금과 장구의 여성적인 섬세함이 법열로 승화되는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침향무.” 심봉사와 딸 청이의 극적인 만남에 눈물을 흘리다가, 심봉사 눈뜨며 덩달아 전국의 봉사들이 눈을 뜨는 재미있는 장면엔 모두가 웃게 되는 판소리 “심청가”,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방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세악 합주 “천년만세,” 인간의 고독함과 세속적인 삶의 욕망을 절도 있는 춤사위로 승화 시킨 “승무,”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피리, 아쟁의 각 악기마다의 개인기를 맘껏 보여주면서 약속하지 않은 가락 속에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시나위.”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꾸미지 않은 기교에 담은 민요, 죽은 이를 보내는 애절한 춤 “신칼 대신무,” 어깨춤을 절로 추게 만드는 흥겨운 “사물놀이.”
우리 조상들은 소리에 우리의 삶을 담았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 삶의 애환을 달래고, 음악에 우주적인 철학과 인생을 담아 그 소리로 마음을 수양하였다. 음악 속에 희로애락의 긴장과 이완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가 하면, 때로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절제되어 그 감정을 뛰어넘는 선정의 세계가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의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일상의 지루함과 고단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절로 움직이는 어깨춤 속에 피로를 잊고, 구성지게 나오는 추임새 속에 새 활력을 얻게 되고, 깊은 수양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음악 속에서 우리 마음의 깊은 선정의 경지를 맛보게 한다. 긴 세월 속에 시기마다 더해진 음색과 가락의 특징은 예술적 경지를 더욱 풍부하게 하면서 말이다.
삶의 지루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때는 바로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 해 오던 것들로부터 새로움을 찾을 때이다. 특히, 생명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 숨 속에서 새로움을 찾을 때의 기쁨이란. 그리고 그 호흡이 아름다운 선율과 만날 때, 새로움은 그 깊이를 더한다. 깊은 선정의 역동적인 고요함부터, 희로애락의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보여준 한국의 소리. 이렇게 먼 타국에서 들은 한국의 소리에 우리 모두가 참 새날을 맞이하길 염원해본다.
이 글은 샌프란시스코 한인문화원 주최로 지난2월 2일 열렸던 한양대학교 국악연주단초청 설날 축제를 본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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