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째 새해 같은 기분 없이 새해를 맞는다. 학창시절처럼 해가 바뀌어 새 교실에, 새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대학입학이나 군 입대처럼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해야 하는 일도 없다.
더 이상 그런 시절 속에 있지 않음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에, 그리고 세월에 무신경해져가는 나 자신에 언뜻 놀라기도 한다. 찰나같이 하루하루가, 한달한달이, 해가 바뀌다보니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는 원효스님의 말씀이 귓가에 울린다. 아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중고등학교 시절 일년에 10센티미터씩 키가 쑥쑥 크던 때도 있었고, 대학시절 새로 접하는 학문과 사상들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며 머리와 가슴이 매일매일 넓어져 감을 감지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후 일정 나이가 되면 -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서른 즈음이라고 치자 - 눈에 띄는 변화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직장을 옮긴다든지, 이사를 한다든지 하는 경우를 빼고는 같은 생활의 반복이다. 그래서 일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 딱히 무엇이 달라졌노라 말할 만한 것이 없다. 말 그대로 나이만 한살 더 먹은 것이다.
삼십대인 내게 나이 듦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나이 듦이 현명한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막연하나마 나이가 ‘잘’ 든다는 것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오늘보다 내일 타인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나의 배움과 경험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또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육체의 성장은 멈췄지만 영혼과 인격의 성장은 멈추지 않기에, 인간은 죽는 날까지 배운다고 하지 않는가.
작년 이맘때 세웠던 계획들을 훑어보니, 하고 싶었던 일들의 반 정도는 바쁘다는 핑계로 시작도 못했다. 유럽 배낭여행은 시도도 못했고, 공부하려고 사다놓은 책들엔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직장일에 쫓겨 정작 우리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제외되곤 한다. 중요한 일보다는 급하게 해야 하는 일들로 하루가 채워져 간다. 작년 한해동안 보고 싶은 친구나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은 서너 통이 전부다. 내가 업무상 하루에 주고받는 이메일은 100여개. 새 수첩에 빼곡히 적혀있는 스케줄은 업무 관련 미팅이나 일정들이 대부분이다. 가족이나 친구의 생일을 기록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다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아 신년 계획을 끄적거려 본다. 직장이나 일보다 내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들과 하고 싶은 일들로 적어도 한가지 새로운 것을 배울 것, 100 권의 책을 읽을 것, 새로운 곳을 여행할 것 등등.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성장한 일년 후의 내 모습을 위해서, 그리고 ‘잘’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 내가 세운 계획표대로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더 이상 난 노력하지 않아도 키가 자라던 십대가 아니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시상이 떠오르던 이십대도 아니기 때문이다.
김진아 /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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